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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벌금 못내면 헌혈, 그것도 싫으면 감옥!” 미 법원 황당 판결

등록 2015-10-21 15:11수정 2015-10-22 10:57

범죄 저질러 벌금 부과된 500여명 피고인들
헌혈차 오르기 위해 차례 기다리는 진풍경도
빈곤 법률센터 측 “신체통합권 침범 위헌”
“신사 숙녀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참고로 (법원) 밖에 헌혈차가 있습니다. 만일 돈이 없는데 감옥에 가기 싫으시면, 옵션이 있습니다. 오늘 헌혈하시면 됩니다. 헌혈 한 뒤 여러분이 헌혈했다는 표시가 된 영수증을 가져오세요.”

미국 앨라바마주의 순회법원 판사인 마빈 위긴스가 지난달 17일 아침 법정에 들어서며 한 말이다. 그는 벌금을 낼 돈이 없으면서 헌혈도 하기 싫은 피고인들을 향해서는 “보안관에겐 (여러분을 구금할 만큼) 수갑이 충분히 있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사건 기록표에는 일몰 후 사냥한 혐의, 폭행 혐의, 마약 소지 혐의와 ‘공수표’를 날린 혐의 등 다양한 범죄를 저질러 벌금이 부과된 500여명의 피고인이 적혀 있었다. 법원 앞은 벌금을 선고받은 수십명의 피고인이 헌혈차에 오르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들은 1파인트(0.473리터)의 피를 뽑은 대신 100달러짜리 ‘벌금 할인 영수증’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벌금형을 받고 법정에 있던 칼 크로커(42)는 위긴스 판사의 법정 발언과 헌혈차에서 오간 말을 녹음했다. 이후 그는 헌혈차를 보낸 혈액은행 ‘라이프사우스 커뮤니티 블러드 센터스’가 최근 에이즈 감염 혈액 때문에 40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녹음 내용을 공개했다. 크로커는 한 할아버지가 헌혈 뒤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모습을 봤다고도 했다. 다른 피고인 트레이시 그린은 <뉴욕 타임스>에 한 젊은 남성은 위긴스 판사가 제시한 방법을 듣고, 너무 화가 나 항의하다가 법정에서 끌려나갔다고 말했다. 이날 법정에 있었던 변호사 제임스 반스 주니어도 판결 내용이 “정말 특이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 사건을 접한 법률 전문가와 의료진이 하나같이 ‘부적절한 방식’이라는 의견을 보였다고 전했다.

19일 남부 빈곤 법률센터는 위긴스 판사를 상대로 윤리 규범 위반 소송을 냈다. 위긴스 판사가 “신체통합권(bodily integrity)을 침범했다”는 것이었다. 단체는 또 판결 절차가 위헌이라고도 주장했다.

법정에서 벌금을 받는 방식은 앨라바마 법원들이 재정난을 해소하고자 도입한 새로운 제도 가운데 하나다. ‘헌혈 판결’은 1950년대 미국 몇몇 지역 법원의 선례가 있다. 하와이 호놀룰루 법원의 경우 일본의 진주만 공격 뒤 교통법규 위반자들에게 벌금 대신 헌혈을 하도록 했었다. 더 일반적으로는 수감자들을 상대로 헌혈의 대가로 현금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형량을 감량해줬다. 가장 최근으로 보면 2008년까지 플로리다주 브라워드 카운티의 한 판사가 고통법규 위반자들에게 벌금과 사회봉사, 헌혈 중에 형벌을 고르도록 했다. 하지만 1970년대 간염 전염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며 이같은 ‘반강제 헌혈 보상제’가 사라지고 자원 방식으로 바뀌었다.

혈액 매매가 허용된 미국에서는 매매 혈액에는 ‘지불’이라는 표시를 하도록 하는 식품의약국(FDA)의 규정이 있다. 미 병원들은 일반적으로 ‘지불’ 표시된 혈액 사용을 꺼린다.

위긴스 판사의 소위 ‘헌혈 판결’에 대해 아서 캐플런 뉴욕 대학 랭곤 메디컬센터 교수는 “약 3000가지 이유에서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같은 판결이 피의자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시술을 선택하도록 몰아넣으며 공공보건에도 위협이 된다고 설명했다. 위긴스 판사는 한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벌금을 낼 수 있도록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 도우려고 했던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남부 빈곤 법률센터는 헌혈한 피고인들 가운데 벌금을 ‘할인’ 혹은 ‘면제’ 받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라고 밝혔다.

미국 언론들은 위긴스 판사가 2009년에는 자신의 친척 3명이 연루된 투표 사기 사건을 기피 신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90일간 무급 복무의 징계를 받은 바 있다고 전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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