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저서 <위대한 탈출> 국내 번역본의 ‘적극적인 왜곡’ 논란과 관련해, 미국의 원출판사인 프린스턴대출판부가 “왜곡이 맞다”며 한국어판을 낸 한국경제신문사 계열 출판사(한경BP) 쪽에 기존 번역본 전량을 회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프린스턴대 출판부는 지난 22일(현지시각) 자체 누리집에 올린 보도자료에서 “<위대한 탈출>의 한국어 번역판이 원전을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은 변경을 가했으며, (저자의 의도와 달리)이 책을 명백하게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반하는 위치에 두려는 한국 경제학자 서문이 포함된 채로 출간되었다”고 지적했다. 또 “이러한 변경과 새로운 서문은 원저자나 프린스턴대 출판부에 의해 사전에 검토되거나 승인된 것이 아니다”고 명시했다. 이 서문은 <피케티 vs. 디턴. 불평등을 논하다>라는 제목이 붙은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의 9쪽짜리 글을 말한다. 번역 왜곡에 현진권 원장의 승인받지 않은 서문이 한몫 했음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번 번역본 왜곡·오류 파문은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인 지난 19일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자신의 블로그에 원본과 번역본을 꼼꼼히 대조해가며 처음으로 문제 제기한 이후 점점 확대됐다. 국내 번역본 왜곡·오류 사실이 드러나자 프린스턴대출판부는 즉각 번역본 왜곡 내용과 경위에 대해 자체 내부 조사를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12일(현지시각) 교내 알렉산더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수상소감을 밝히며 양손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 프린스턴/AP 연합뉴스
특히 프린스턴대 출판부가 이번 보도자료에서 밝힌 내용은 지난 20일 한경비피가 낸 입장자료와도 배치된다. 당시 한경비피는 책 서문의 일부 누락과 변경을 인정하면서도 “원저자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았으며, 독자의 편의를 위해 출판업계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편집 변형’(editorial change)를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프린스턴대 출판부가 한글 번역본의 왜곡 사실을 분명히 하고 전량 회수를 요구하는 등 강도높은 대응에 나섰다는 점에서 앞으로 추가적인 조처가 주목된다. 프린스턴대 출판부는 한경비피가 조만간 새 번역본을 내놓기로 한 것과 관련해 “현재 나와 있는 책을 무두 회수해야 하며, 새 번역본은 원문을 정확하게 살리고 별도의 검토과정도 거쳐야(independently reviewed) 할 것”이라며, 특히 “이 책이 불평등에 관한 다른 저작들과 대조적으로 읽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서문도 새로운 번역에서 빠져야 한다”고 명시했다.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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