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개인적 소신을 법관의 양심으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법관의 양심이란 주관적, 개인적인 게 아니라 직업적, 객관적 양심을 의미한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2011년 12월 신임 법관 임관식에서 한 말이다. 한때 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사법부의 신뢰도가 계속 추락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대법원장이 일선 법관들에게 당부한 말이다. 법관 개개인의 독립성을 중요시하는 일선 판사들의 정서와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사법부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대법원장의 ‘충정’으로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이 말이 다시 떠오른 건 지난달 30일 열린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파기환송심에서 재판부와 검찰의 충돌 소식을 들었을 때다. 서울고법 형사7부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준비기일에서 박형철 부장검사는 김시철 재판장의 편파적인 진행에 반발해 법정을 뛰쳐나갔다. 검찰은 “재판장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국민이 다 알 수 있게끔 재판을 진행하는 게 과연 공정한 재판인가”라고 물었다. 김 재판장이 어떤 ‘개인적 소신’에 따라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는 ‘뼈 있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진행된 네 차례 공판준비기일 동안 재판부는 큰 틀에서 사건을 들여다보기보다 검사의 말꼬투리를 잡는 방식으로 재판을 진행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검찰은 재판부가 유무죄 예단을 갖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재판 당사자로부터 그런 의심을 받으면 재판의 공정성은 훼손되고 사법부의 신뢰는 그만큼 추락할 수밖에 없다. 재판이 한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그 재판 결과를 신뢰할 국민이 과연 어디 있겠는가.
이 사건은 대법원이 지난 7월 원세훈 전 원장의 혐의에 대해 유무죄 판단도 하지 않은 채 사건을 파기환송하며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주요 증거들의 증거능력만 부인한 채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앞서 2심 재판부는 국정원법만 유죄로 인정했던 1심과 달리 국정원이 선거개입도 했다고 판단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유죄로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어떤 판단도 하지 않은 채 그 판단을 파기환송심에 떠넘겨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그 누구보다 사법부의 신뢰를 강조해왔다. 대법원이 현재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는 상고법원 추진도 대법원 기능의 정상화를 통해 대국민 신뢰도를 높인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대법원은 상고법원을 밀어붙이기 전에 일선 재판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힘써야 하지 않을까.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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