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차별 실태조사 발표
98%, 교사·또래에게 ‘혐오표현’ 들어
보복 당할까 제대로 항의도 못해
98%, 교사·또래에게 ‘혐오표현’ 들어
보복 당할까 제대로 항의도 못해
“학교에서 애들끼리 장난으로 하는 말들을 듣게 돼요. ‘레즈 아냐? 더러워.’ 나한테 하는 게 아닌 걸 아는데도 정말 상처 받아요.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시켜줬으면 좋겠어요.”(레즈비언·18살)
청소년 성소수자 대다수(98%)가 학교에서 교사나 다른 학생들로부터 ‘혐오 표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열에 일곱은 이런 말을 듣고도 ‘자신이 성소수자임이 밝혀질까봐’(77%) ‘보복을 당할까봐’(12%) 제대로 항의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로부터 용역을 받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지난해 6월부터 청소년 성소수자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다. 동성·양성애자, 트랜스젠더(성전환자) 등 성소수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 결과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소년 성소수자 2명 중 1명(54%)은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놀림이나 모욕(47.5%)을 당하는 것은 기본이고, ‘아우팅’(다른 사람에게 원치 않게 성적 정체성이 공개되는 것·24.5%)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10명 중 2명(19.4%)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
울타리가 돼야 할 학교와 교사들도 제구실을 못했다. 오히려 동성교제 금지 정책(19%)이나, 동성애자의 이름을 적어 내게 하는(4.5%) 등 또다른 괴롭힘을 줬다. 아예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징계 또는 강제전학·퇴학 조처(8%)를 내리기도 했다. 청소년 성소수자 10명 중 7명(71.1%)은 “말해봐야 달라질 게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문제를 알리지 않았다.
사회에 나와서도 차별은 여전했다. 이번 조사에 참가한 성인(948명) 성소수자 열 중 넷 이상이 성별 정체성 때문에 고용 관련 차별을 경험했는데, 동성·양성애자의 14.1%, 트랜스젠더의 16.5%가 성적 정체성 때문에 해고나 권고사직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멀쩡히 회사를 다니다가 애인과 데이트를 하는 장면을 관리자에게 들켜 사직당한 이도 있었다.
특히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은 더욱 심각했다. 면접 때 ‘성기가 어떤 게 달렸느냐’는 질문을 받는가 하면, 채용 과정에서 주민번호를 조회당한 뒤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져’ 탈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김현경 연구원은 “이 때문에 성소수자 대다수가 객관적으로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에 취업하거나, 자영업·프리랜서 형태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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