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새벽 2시20분께 김포 고촌읍 제일모직 물류창고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났다. 불길이 사그러지지 않아 소방관들과 헬기가 낮까지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김포/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소방공무원 인권상황 실태조사
지난 11일 서울의 한 소방서엔 헬멧 등 새 개인보호장비들이 보급됐다. 예산이 있을 때마다 노후장비 교체가 이뤄지는데 이번엔 소방관 ㄱ(35)씨에게도 차례가 돌아왔다. “인원수대로 장비가 나오는 게 아니라 늘 장비가 달려요. 그래서 신참들은 대개 선임자가 쓰던 걸 물려받아 쓰곤 해요. 저도 이 헬멧을 물려받아서 9개월 정도 썼어요.” 새 헬멧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ㄱ씨가 한껏 들뜬 표정을 지어 보였다. ㄱ씨는 이날 자신의 발 크기(255㎜)보다 살짝 큰 260㎜짜리 기동화를 신고 있었다. 이 신발도 선임자에게서 이어받은 것이다. “화재 진압 현장에서 공기호흡기 다음으로 중요한 게 손장갑이거든요. 많이 낡았는데도, 장비가 순차적으로 바뀌다 보니 5만원씩 하는 사제 장갑을 사서 끼는 경우도 있어요.” ㄱ씨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선임자 헬멧·신발 물려받아”
장갑 낡아 사서 끼는 경우도 불안장애, 전체노동자 15배 넘어
“다쳐도 제 돈 내고 치료” 83%
국가인권위원회가 12일 ‘소방공무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12일 공개했다. 전국 소방공무원의 21%가 참여한 역대 최대 규모의 조사다. 조사 결과를 보니, 소방공무원들의 건강 상태는 전체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장애와 불면증을 겪고 있다는 비율이 43.2%에 달했으며, 10명 중 2명은 우울·불안장애를 보였다. 유병률 면에서 전체 노동자의 15~20배나 높은 비율이다. ‘최근 1년간 자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도 7.2%나 됐다.
인명 구조 중 다쳐도 ‘공무상 요양’을 신청하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10명 중 8명(83.3%)이 일하다가 다쳐도 제 돈을 들여 치료를 받았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가 ‘소속기관이 행정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38.7%)였다.
출동 과정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범칙금이나 상대방 차량 수리비들은 대원들이 나눠 내기 일쑤다. 최근 2년간 5%가 교통사고를 경험했는데, 67.8%가 범칙금을, 79.2%가 차량 수리비를 부담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신호위반 등 11대 중과실로 인한 사고가 발생한 경우 운전자 본인이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이번 조사를 맡은 김승섭 고려대 산학협력단 교수는 “소방공무원에게 단결권·단체교섭권을 가진 대표기구 구성과 가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 참여한 소방공무원 10명 중 9명은 이런 단체가 생긴다면 가입하겠다는 뜻을 보이기도 했다.
박태우 현소은 기자 ehot@hani.co.kr
장갑 낡아 사서 끼는 경우도 불안장애, 전체노동자 15배 넘어
“다쳐도 제 돈 내고 치료” 83%
소방공무원과 일반노동자의 유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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