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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북도 남도 외면한 사람들…“차라리 조선족이 낫다”

등록 2015-11-25 21:45수정 2015-11-26 11:06

‘비보호 탈북민’ 조아무개씨가 18일 낮 인천 서구 한 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질환과 관련해 병원진료를 받은 뒤 집으로 걸어가고 있다. 인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비보호 탈북민’ 조아무개씨가 18일 낮 인천 서구 한 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질환과 관련해 병원진료를 받은 뒤 집으로 걸어가고 있다. 인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우리 안의 이방인 ‘비보호 탈북민’

입국 1년 지나 보호신청 했다고
국가보조 못받는 ‘비보호’ 조씨
“빨리 자수해야 하는 것 모른채
도움받으려 이제 했는데 불공평
주거·의료 지원이라도 받았으면”
2003년 통계 공개뒤 비보호 172명
조아무개(44)씨는 20대 중반 이후 국적이 세 차례나 바뀌었다. 이제는 한국인이지만 3년 전까지 법적으론 중국인이었고, 태어나 1998년까진 북한인으로 살아왔다. 생김새도 말도 바뀐 게 없지만 조씨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뭐하러 여기까지 나와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2002년 중국 국적을 갖고 한국인과 국제결혼을 하며 입국했다. “남한 들어오려고 중국 호적을 사서 중국인으로 산 지 4년쯤 됐을 때”였다. 한국인의 아내로 두 딸을 낳았지만 7년밖에 살지 못했다. 남편의 매질과 시어머니의 욕설을 견디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혼 뒤 2012년에야 “두만강을 넘었었다”고 신고할 마음을 먹었다. 전남편은 “신고하면 잡혀간다”며 탈북 사실을 알리지 못하게 했다. 두 딸을 데리고 아등바등 살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수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신용카드 회원 모집 일도 해보고 여기저기 혼자서 힘겹게 돈 벌러 다녔지만 입에 풀칠하기가 쉽지 않았던 터다. “결과는 ‘비보호’였어요. 자수하는 것도 잘 몰랐는데, 그걸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거죠.” 다른 탈북민들이 한국 정부로부터 임대주택, 주거지원금, 직업훈련, 취업장려금, 고용지원금 등 다양한 혜택을 받는 동안 조씨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었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정착지원법)에 따라 ‘국내 입국 후 1년이 지나서 보호신청한 사람’은 ‘비보호’로 결정난다. 조씨는 ‘비보호 탈북민’이다.

2003년 이후 공개된 통일부 공식자료에 따르면 ‘비보호 탈북민’은 172명이다. 하지만 전체 비보호 탈북민 규모를 공개하지 않아 정확히 몇명인지 알 수 없다. 비공식적으로는 400~5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공식자료로는 2003~2009년까지 연간 1~4명에 그쳤지만, 2010년 11명을 시작으로 두 자릿수로 급증하기 시작했다. 조씨 역시 이때 비보호 결정을 받았다.

정착지원법은 마약·테러 등 국제형사범죄자, 살인 등 비정치적 범죄자, 위장탈출 혐의자 등과 더불어 체류국에 10년 이상 생활 근거지를 뒀거나 국내 입국 뒤 1년이 지나서 보호신청을 한 사람 등을 비보호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 탈북민 보호 여부는 국가정보원과 북한이탈주민대책협의회(탈북민대책협의회)가 결정한다. 국정원장은 ‘국가안전보장에 현저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사람’을 비보호 대상으로 구분한다. 탈북민으로 위장한 간첩 등의 입국을 막으려는 장치로 국정원장이 결정한 비보호 대상은 현황과 규모가 외부에 알려진 바 없다.

북한이탈주민 입국 및 비보호 결정 현황
북한이탈주민 입국 및 비보호 결정 현황
조씨의 경우 탈북민대책협의회에서 비보호로 결정했다. 조씨는 정착지원법이 규정한 ‘국내 입국 뒤 1년이 지나서 보호신청한 사람’에 해당돼 비보호 탈북자가 됐다. 통일부 집계로 2008년 이후 비보호 탈북민 163명 가운데 77.3%(126명)가 입국 1년이 넘었다는 이유로 비보호 결정을 받았다.

2010년 이후로 비보호 탈북민이 급증하게 된 이유도 같다. 탈북민 입국자가 연간 3000명에 육박하며 정점을 찍은 2009년 정착지원법이 개정돼 ‘입국 1년 이후’ 규정이 만들어졌다. 더구나 탈북 이후 중국 등을 경유하면서 ‘조선족’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입국하는 경우가 많아 보호 신청 제도 자체를 모르거나 알아도 시간을 넘기는 이들이 많다.

조씨는 “너무 억울하다”고 거듭 말했다. “불공평하다”는 말도 여러차례 했다.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도움받으려고 자수를 한 건데… 시간이 지나서 안 된다는 걸 몰랐어요. 자수를 해야 한다는 것도 잘 몰랐는데요. 자수하면 잡혀간다고 해서 조선족인 것처럼 지내고… 몸도 아프고 차별도 심한데, 차라리 조선족이라고 하는 게 나아요.”

정착지원을 받을 수 없어 경제적 어려움도 토로한다. 조씨의 경우 화장품 방문판매업을 하면서 한 달에 100만원 남짓 번다고 했다. 26㎡(8평)짜리 집에 살면서 월세로 35만원을 내고 아이 둘과 생활하려 하다 보니 “몸이 종합병원 수준”인데 병원도 제대로 가지 못한다. 조씨는 “정착금은 못 받아도 주거지원, 의료지원은 좀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보호 대상 탈북민들은 정착지원금 700만원(1인 기준), 주거지원금 1300만원(1인 가구 기준), 임대주택 알선 혜택을 받고 직업훈련 이수 시간에 따라 최대 170만원의 추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또 취업 뒤 3년간 근속하면 수도권 근무자는 1650만원, 지방근무자는 1950만원의 취업장려금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비보호 탈북민은 긴급생활안전자금 100만원이 전부다.

최근 북한인권정보센터 부설 정착지원본부가 비보호 탈북민 10명을 면접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들의 월 근로소득은 평균 64만6000원이었다. 전체 탈북민 월평균 소득 147만1000원(2014 북한이탈주민 실태조사)의 절반 이하다. 직업훈련·취업지원 등에서 소외된 결과다. 대개 비보호 탈북민들은 식당이나 공장 등에서 일한다. 10명 가운데 한국생활에 만족한다는 사람은 1명뿐이었다. 탈북민 67.6%가 만족한다는 실태조사에 견줘 뚜렷이 낮다. 더구나 올 들어 여성 탈북민 비율이 80%를 넘어섰다. 정착지원본부 면접조사자도 10명 중 9명이 여성이었다. 올해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남성 정규직 임금이 100일 경우 여성 비정규직은 36.3을 받고 있다. 비보호 탈북여성의 임금이 이보다 나을 리 없다.

정재호 북한인권정보센터 정착지원본부장은 “정부의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정책방향은 인도주의에 입각한 특별한 보호라고 법률에 명시하고 있지만 그 범위를 보호 대상으로 한정짓고 있다. 보호 대상에게만 인도주의에 입각한 보호와 지원을 제공한다면 비보호 탈북민에게는 비인도주의적 처우를 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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