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현장 I ‘박대통령 비판 전단’ 본때 보이기 구속재판
“보복과 응징…박 정권의 축소판이 이 재판”
“보복과 응징…박 정권의 축소판이 이 재판”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 35곳은 지난 3월17일 전북지방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이 ‘박근혜 대통령 비판 전단’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전주/연합뉴스
박성수씨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 구속
대구지법 김태규 판사 직권으로
구속기간 2개월씩 2차례 연장하고도
‘집시법 위반’ 추가 구속기간 또 늘려 다음달 22일 선고공판 앞두고
최후변론서 ‘이상한 재판’ 비판
“70년대 유신정권에서나 있을 재판
대한민국 국민임이 부끄럽다” 경찰은 변씨에게 전단을 준 사람이 전북 군산에 사는 환경운동가 박성수(42)씨인 것을 알아냈다. 박씨와 변씨는 사는 곳은 달랐지만 환경운동을 하며 알게 됐다고 한다. 3월12일 경찰은 박씨의 집과 전단을 찍은 인쇄소, 변씨의 집과 아내 오은지(44)씨의 출판사인 ‘한티재’ 등을 압수수색했다. 박씨와 변씨는 ‘과잉 수사’라며 반발했다. 수성경찰서가 출석요구서를 보내자 박씨는 출석 대신 개 사료를 보냈다. ‘권력의 주구’란 항의 표시였다. 박씨는 군산에서 대구로 찾아가 수성경찰서 입구에 개 사료를 뿌렸다. 대구지방경찰청 입구에서 개 사료를 들고 ‘민주경찰 사망 애도식 및 전단지 공안탄압 규탄 기자회견’을 했다. 경찰 수사에 ‘개 사료’로 ‘저항’하던 박씨는 4월2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입구에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위반한 혐의로 체포됐다. ‘전단지 공안몰이 배후조종 대검찰청 규탄 기자회견’을 하며 박씨가 ‘개꼬리 흔들기 공무집행을 중단하라’는 항의 표시로 “멍멍”이란 소리를 세차례 냈다. 바로 대검 직원이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박씨는 대검 근처 서초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풀려났지만 곧바로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체포됐다. 서초경찰서 앞에서 체포영장을 갖고 기다리고 있던 수성경찰서 경찰관들이 박씨를 수성경찰서로 데려갔다. 법원은 4월30일 형법상 명예훼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 혐의로 박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박씨는 5월11일 구속 기소됐다. 전단을 뿌린 변씨와 신씨도 함께 불구속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명예훼손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는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로, 수사기관이 피해자의 고소 없이도 수사를 시작해 가해자를 입건하거나 기소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통상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으면 수사를 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전단을 만든 박씨를 고소한 적이 없다. 5월7일 대구지방변호사회(회장 이재동)는 “비판의 자유라는 민주사회 기본적 인권이 침해될 여지가 있다”며 박씨를 무료 변론하기로 결정했다. 박씨의 변호는 김인숙·이승익·류제모·김미조 변호사가 맡았다. 검찰은 재판에서 ‘정윤회 염문을 덮으려고 공안정국 조성하는가?’(전단), ‘정윤회 염문 덮으려 추악한 짓 멈추지 않네. 독재자 딸 박근혜는 그 애비보다 더하구나’(페이스북) 등의 내용이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씨의 변호인단은 “그것은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의 표명일 뿐 어떤 사실의 적시가 아니며, 사실의 적시라고 본다 하더라도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맞섰다. 형사소송법에는 피고인의 구속기간을 2개월로 정하고 있다. 다만 계속 구속할 필요가 있는 경우 심급(급이 다른 법원에서 여러 번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제도)마다 2개월 단위로 2차례에 한하여 구속기간을 늘릴 수 있다. 1심 재판에서는 피고인을 최대 6개월 동안 구속할 수 있다. 재판을 맡은 대구지법 형사2단독 김태규 판사는 박씨의 구속기간을 2차례 연장했다. 박씨는 6개월 동안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구속 기간이 지난 10일까지였다. 지난 10일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구속 기간이 끝났지만 박씨는 계속 갇혀 있다. ‘명예훼손’ 관련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집시법 위반’ 혐의가 병합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4월28일 대검 앞 기자회견에 대해 집시법 위반 혐의를 박씨에게 적용해 7월16일 추가 기소했고, 김 판사는 직권으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해 지난달 20일 박씨의 구속영장을 다시 발부했다. 그래서 박씨는 7개월째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앞서 김 판사는 6월15일 “도망의 염려가 있다”며 박씨가 낸 보석 청구를 기각하기도 했다. 김 판사는 6월6일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송전탑 공사 현장에서 경찰을 폭행한 혐의(공무집행방해)로 불구속 기소된 최창진(34)씨에게 징역 6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한 바 있다. 청도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시민운동가 20여명이 비슷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법정 구속된 것은 최씨가 유일했다. 항소심을 맡은 대구지법 형사1부(재판장 이영화)는 지난달 15일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인숙 변호사는 “명예훼손 사건에서 당사자의 고소가 없는데도 경찰이 알아서 수사에 나서고, 구속까지 되고 보석까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보고 매우 이례적이라고 생각했다. 명예훼손 사건으로 기소돼 7개월째 구속 상태로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24일 오후 대구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대구지검 박순배 검사는 박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변씨와 신씨에게는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10개월을 구형했다. 박씨에 대한 선고 공판은 다음달 22일 오전 10시 열린다. 불구속 상태로 박씨와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변씨는 “법정에서 박성수씨를 볼 때마다 야위어지고 있어 가슴이 아팠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법정에서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조금 놀라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 24일 최후변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웃음이 나오려다 말았습니다. 70년대 유신정권에서나 있을 법한 재판이 2015년도 세계 경제 10대 대국인 대한민국에서 빚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참담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생략) 그럴 거면 처음 잡혀 왔을 때 즉결 처형을 해버리지, 뭐하러 시간 낭비하면서 이런 재판을 진행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저는 이 자리가 재판하는 자리가 아니라 청와대 국무회의 자리라는 착각이 듭니다. 제가 태어나서 여러 번 재판을 받아왔지만(※그는 2012년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받은 경험 등이 있다), 이렇게 믿음이 없는 재판은 처음입니다. (생략) 국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저는 구속됐고, 7개월째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 서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습니다만 부끄럽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라면 (여당) 원내대표까지 짓밟고 철저히 보복과 응징의 정치를 하는 집단입니다. 지난 7개월 동안 정권의 작은 축소판이 이 재판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판사님, 맹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부디 이 재판 7개월 동안 있었던 과정 되돌아보시고, 고민해주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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