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2017년 폐지될 예정인 사법시험을 2021년까지 한시적으로 연장하자는 입장을 내놨다. 사법시험 존폐 일정을 바꾸려면 법 개정이 필요해, 법무부 주장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정부 부처가 정책에 대한 입장이 아닌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을, 기자회견으로 밝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법무부는 3일 오전 11시 정부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사법시험을 2021년까지 4년간 폐지 유예”하자는 입장을 발표했다. 사법시험은 로스쿨 제도의 도입과 함께 제정된 변호사시험법에 따라, 단계적인 인원 감축을 거쳐 내년 마지막 1차 시험을 치르고 2017년에 2차 시험을 치른 뒤 그해 12월말 최종 폐지될 예정이다.
법무부는 “국민의 80% 이상이 로스쿨 제도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사법시험의 존치를 주장하고 있고, 사법시험 존치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며 “제10회 변호사시험이 있는 2021년까지 4년간 사법시험 폐지를 유예하고, 그동안 폐지에 따른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무부는 “오늘 발표되는 ‘법무부 입장’이 입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사시 존폐 여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법무부가 기자들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여는 방식으로 사시 존치 입장을 밝히면서 사시 존치 쪽에 상당한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법무부 의지대로 사법시험이 4년간 존치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변호사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열쇠를 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일부 위원들이 사시 존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을 지키고 운영해야 할 법무부가 현행법과 반대 방향으로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을 놓고 부정적인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인은 “법무부가 기존 법률 내용과 다른 내용을 대대적으로 밝히는 것은 매우 오버하는 행동이다. 법무부가 사시 존치에 대한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사시 존폐를 놓고 법조계는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대한법학교수회 등은 사시가 경제적 약자에게 법조계 진출 기회를 제공하고, 로스쿨-사시의 상호 경쟁을 통해 법률 시스템이 나아질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사시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사시 출신 변호사(35)는 “사법시험은 양질의 법조인을 양성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통로이다. 굳이 없앨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로스쿨협의회와 한국법학교수회 등은 다양한 경력을 가진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 제도의 도입취지를 살려야 한다며 예정대로 2017년 사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사시가 유지될 경우 사시 출신 법조인들의 견고한 카르텔이 유지될 것이라는 주장도 편다. 로스쿨 출신의 한 변호사(35)는 “사시 존치 주장은 사시 출신 법조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펴는 주장”이라며 “사시가 없어지면 이들이 법조계에서 누려온 기득권도 급속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사시 존치 입장을 낸 근거로 자체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등을 들었다. 일반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사법시험 폐지와 존치에 대한 의견이 각각 23.5%와 85.4%로 나왔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2021년으로 사법시험 폐지 유예 시한을 정한 것에 대해 “‘로스쿨-변호사시험’ 제도가 10년간 시행되어 제도로서 정착되는 시기가 2021년인 점, 변호사시험의 5년·5회 응시횟수 제한에 따라 불합격자 누적이 둔화·정체되어 응시인원이 약 3,100명에 수렴하는 시기 또한 2021년인 점, 로스쿨 제도의 개선 방향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 분석에 필요한 기간 등을 감안하여 2021년까지로 하였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유예기간 동안 사법시험 폐지에 따른 여러 대안을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사시 1·2차와 비슷한 별도의 시험에 합격하면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더라도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과 로스쿨이 공정성을 확보하고 안정화되도록 전반적으로 로스쿨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 향후 특단의 사정 변경으로 불가피하게 사법시험 존치가 논의될 경우에는 현행 사법연수원과 달리 별도 대학원 형식의 연수기관을 설립하여 제반 비용을 자비 부담시키는 방안 등이다. 최현준 정환봉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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