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 민중총궐기’ 열렸던 광화문광장이 배경으로
물대포 쏘는 부분에서는 백남기씨 모습도 담아
“그날 상황 보면서 이게 맞는건가 생각에 게임 만들어”
물대포 쏘는 부분에서는 백남기씨 모습도 담아
“그날 상황 보면서 이게 맞는건가 생각에 게임 만들어”
이 엄중한 시국에 게임 하나 소개시켜 드리려고 합니다. 웹페이지 기반으로 만들어진, 어떻게 보면 간단하지만 어려운 이 게임의 제목은 ‘An untitled game for South Korea’입니다. 굳이 해석하자면 ‘대한민국을 위한 이름없는 게임’인데요. 게임은 지난달 14일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렸던 광화문광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방패를 든 경찰이 나오고, 시위대도 나옵니다. 시위대와 경찰은 한 턴씩 돌아가면서 움직입니다. 플레이어가 경찰이 돼 시위대를 막는 것이 게임의 목적(?)입니다.
한번 해보시렵니까? 모바일에서는 잘 안되고요, 컴퓨터에서 하는게 쉽습니다. 그런데 게임이 좀 어렵습니다. 팁 아닌 팁을 드리자면, 경찰 4명이 모이면 차벽이 되고, 3명짜리 경찰 2개를 모으면 살수차가 됩니다. 차벽과 살수차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게임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게임을 해보시고 함께 나눠보시죠.
▶게임 페이지: http://debugger-net.github.io/GameForKorea2015/
해보시니 어떻습니까? 저는 도무지 어려워서 잘 못하겠더라고요. 게다가 경찰에 감정이입을 해서 움직이다 보니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대체 이 게임은 왜 만든 것일까요? 한 인디게임 개발자로부터 “이 게임이 개발자들에게 많이 회자되고 있다. 플레이를 해보니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는 제보로 이 게임을 알게됐는데요. 수소문 끝에 개발자 ‘디버거’씨를 인터뷰하게 됐습니다. 인터뷰는 트위터를 통해 이뤄졌고 디버거씨는 “온라인에서의 정체성(아이덴티티)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신상을 밝히지 않는 점 양해해달라”고 했습니다. 본업도 게임개발자라고 합니다.
디버거씨는 민중총궐기가 있었던 지난달 14일 밤을 새가며 게임을 만들어 지난달 16일 저녁에 게임을 공개했다고 했습니다. 게임을 만든 이유에 대해 물으니 “(민중총궐기 상황을 보면서) ‘이게 맞는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다만 “엔딩이나 기타 뭔가를 통해 직접적으로 어떤 말을 하는 것을 지양하고 싶었다”면서도 “플레이의 경험 자체로 뭔가를 전하고, 질문을 던지면서 생각해 볼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게임 제목이 ‘대한민국을 위한 제목없는 게임’인 이유가 조금 이해는 됩니다.
게임의 엔딩은 총 5개입니다. 시위대가 경찰과 차벽·살수차를 뚫고 광화문 광장앞에 당도하면, “Hacking to the Gwanghwamun Gate.(광화문이 뚫렸다) 청와대로는 가지 맙시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차벽·살수차, 경찰과 시위대로 광장이 꽉 차게 되면 “불통.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 그러나 과연,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가?”라는 메시지가 나오죠.
엔딩을 통해 직접적으로 어떤 말을 하고 싶진 않다고 했지만, 좀 캐물었습니다. 광화문 광장이 뚫렸을 때 나오는 ‘청와대로는 가지맙시다’라는 말은 “영화 <실미도>와 이말년 작가의 웹툰을 통해 알려진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라는 인터넷 밈(재미난 말을 적어 넣어서 다시 포스팅한 그림이나 사진)에 대한 패러디를 의도했다”고 합니다. 차벽에 모든 것이 막히는 ‘불통’ 엔딩에 대해선 “저렇게 광장을 가득 메우고, 적어도 수천에서 많게는 십수만명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나와서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데 왜 아무런 변화도 없을(혹은 없거나 더 나빠지는 것 처럼 느껴질)까 하는 부분에 대한 전체적 의문이나 감상 같은 걸 의도한 쪽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물대포를 쐈을 때 엔딩이 비교적 구체적입니다. 실제 민중총궐기 당시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혼자 있는 시위대를 쐈을 경우 “Direct Shooting(직사)”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지난 집회에서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진 백남기씨의 동영상이 나옵니다. 경찰을 쏘면 “아악! 나 같은 편이야! XX XX야!!”라는 메시지와 함께 관련 기사가 뜹니다. 동료 경찰에게 캡사이신을 맞아 눈물 흘리며 화내는 경찰의 모습이죠. 구급차를 쏘면 “Don‘t Shoot the Ambulance(구급차를 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와 관련기사가 뜹니다. 디버거씨는 당시 경찰이 물대포를 사용한 진압에 대해 충격이 컸다고 했습니다. 그는 물대포에 대해 “가장 강하게 ‘저렇게 하는 것이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을 느낀 것이 게임을 만들게 된 직접적인 동기 중에 하나”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거리에서 ‘직사’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는 백남기씨의 모습, 구급차에 발사되는 물대포의 모습이 게임에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디버거씨는 인터뷰 과정에서 게임을 제작한 본인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러차례 강조했습니다. 그는 “체험과 자료제공의 형태로 가장 화제가 되는 이슈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형태로 구성했으니, 체험의 맥락에서 혹은 전체 엔딩이 함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봐달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게임 자체는, 게임이라는 형태의 미디어에 이미 실어 보낸 제 표현이고 이걸 받아들이는 분에 따라, 그 분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 다른 맥락으로 이해되고 해석되고 감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게임을 하시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게임화면 속 광화문 광장과 경찰을 직접 움직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