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봉쇄-폭력, 악순환 끊자 상
지난 5일 서울광장에서 주최 쪽 추산 5만명(경찰 추산 1만4000명)이 모여 연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과 민주회복 민생살리기 범국민대회’와 행진은 ‘이례적으로’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날 집회는 여러차례 평화시위를 공언한 주최 쪽과 예외적으로 차벽과 무장경찰 없이 집회를 관리한 경찰, 그리고 경찰의 집회·행진 금지 통고에 대한 법원의 집행정지 가처분 결정 등 몇가지 조건이 맞물려 가능했던 측면이 크다. 집회·시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시각 변화 없이는 대규모 집회에서 충돌이 반복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금지→강행→봉쇄→충돌 되풀이
정부가 ‘집회는 국민 기본권’
인정할 때 평화 정착 길 열려 대법 “금지·미신고 때도
명백한 위험 없으면 보장돼야”
■ 봉쇄→강행→충돌의 쳇바퀴 5일 범국민대회가 이례적인 ‘평화시위’였다면, 지난달 14일 1차 민중총궐기는 대규모 집회 때마다 반복돼온 전형적인 충돌 양상을 보여줬다. 당시 민주노총과 민중총궐기투쟁본부 등이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집회를 하겠다고 신고를 하자 경찰은 교통 불편(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2조) 등을 이유로 금지 통고를 했다. 서울광장 쪽에서 집회를 끝마친 주최 쪽이 “최고정책결정권자인 대통령에게 목소리를 전달하겠다”며 금지 통고가 난 광화문광장으로 진출하겠다고 나서자 경찰은 차벽으로 막고 시위대를 향해 캡사이신과 최루액 물대포를 발사했다. 이후 일부 시위대가 밧줄로 차벽을 끌어내려고 하는 등 충돌은 격화됐다. 전남 보성에서 올라온 농민 백남기(68)씨가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졌고, 시위대 51명이 연행됐다. 이는 100명이 연행되는 등 큰 상처를 남겼던 지난 4월18일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범국민대회도 마찬가지였다. 미신고 집회로 열린 이날 행사는 경찰이 광화문 일대에 차벽을 세우고 행진을 막으면서 대규모 충돌로 이어졌다. 5월1일 열린 노동절 집회에서는 민주노총이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이 중 일부가 신고된 행진 경로가 아닌 광화문광장 방향으로 행진을 하자 차벽으로 막고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발사하며 충돌이 벌어졌고 시위 참가자 54명이 연행됐다.
■ 법원 “금지·미신고 집회도 보장해야” 인권단체연석회의의 랑희 활동가는 “이들 집회는 엄밀히 말하면 금지 통고를 받은 집회 또는 미신고 집회인 것이지 애초 폭력집회가 아니었다. 경찰이 이 집회가 금지 통고를 받거나 미신고됐다는 이유로 폭력행위가 없었음에도 차벽으로 봉쇄하고 과잉진압을 하면서 폭력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이정일 변호사는 “자신들의 요구와 주장을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대상에 전달하는 것은 집회·시위의 근본적인 속성이다. 그러나 경찰이 집회 관리를 청와대 경호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광화문과 청와대 주변 집회 불허 방침을 고수하는 한, 도심에서 열리는 대규모 집회는 평화적인지 여부를 떠나 금지 통고를 받거나 미신고되거나, 신고 범위를 이탈한 집회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신고된 범위를 일탈한 집회(2001년)나 금지 통고를 받은 집회(2011년), 미신고 집회(2012년)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을 경우 해산을 명하고 이에 불응하였다 하여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신고제도의 취지는 행정관청에 집회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공공질서의 유지에 협력하도록 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는 것이지 집회의 허가를 구하는 신청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범죄 아닌 민주제도 구성요소로 법원이 거듭 이런 판결을 내놓는 이유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교통 소통 등의 충돌하는 다른 법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012년 “집회의 자유는 개인이 국가권력의 개입이나 강제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집단적으로 표명할 수 있는 기본권으로서, 개인의 인격 발현의 요소이자 대의제 자유민주국가의 필수적 구성요소에 속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경찰 등 행정당국은 집회 자체를 범죄시하는 기조를 강화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민주노총 등 일부 단체가 지난달 14일 집회에서 불법·폭력 행위를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며, ‘소요죄’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는 경찰의 6일 발표에서도 이 점은 여실히 드러난다. 민변의 박주민 변호사는 “경찰 등 행정당국, 더 나아가 사법당국까지 집회·시위를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의 중요한 한 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악’ 또는 ‘필요악’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이 집회를 시민의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막아야 되는 어떤 것’으로 보는 기본적인 태도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폭력사태 근절은 결코 풀릴 수 없는 문제”라며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것은 강경 대응과 처벌이 아닌 집회와 시위라는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말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정부가 ‘집회는 국민 기본권’
인정할 때 평화 정착 길 열려 대법 “금지·미신고 때도
명백한 위험 없으면 보장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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