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되지 않은 사실이 기정사실처럼 호도”
학생들 “퇴진 거부 유감…적절치 못한 처신”
학생들 “퇴진 거부 유감…적절치 못한 처신”
이사장·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과 교수 등이 단식과 천막농성을 벌여 1년 넘도록 학내 분규에 휩싸인 동국대에서, 총장 보광 스님(본명 한태식)이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기정사실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입장문을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동국대 학생들은 “정상화의 첫걸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보광 스님은 9일 오후 학교 누리집에 입장문을 내어 “지난 3일 동국대학교 이사회는 두 달여간 지속된 학내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임원 전원이 사퇴하는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며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데 대해 학교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총장으로서 학교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돌이켜보면 언제부터인가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기정사실처럼 호도하고 불가능한 요구를 상대방에게 강요하며 불협화음을 키워왔다”며 “서로 다른 입장과 관점을 고집하면서 불신의 벽을 높이 쌓았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칙과 정도에 벗어난 타협이나 안이한 화해는 결코 동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학생들과의 대화를 줄곧 거부하던 그가 뒤늦게 내놓은 입장문에 대해 학생들의 시선은 차갑다. 같은 날 학생들은 동국대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 보광 스님이 내놓은 입장문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학생들은 “종단 개입으로 단독 후보가 돼 총장이 된 것과 표절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김건중 부총학생회장 단식 때 본관 앞에서 죽어가도 나 몰라라 단 한 번도 찾지 않은 사람이 총장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불신의 벽을 일방적으로 쌓은 것도 보광 스님”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은 또 “그동안 부족한 점에 대해 질책하는 것에 침묵으로 일관해놓고는 격려와 칭찬을 바라시다니 염치가 없다”, “글 어디를 보아도 학생들 입장을 고려해서 쓴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네요. 자격 미달인 총장 물러나라는 게 왜 불가능한 요구입니까? 목숨을 건 단식과 투신 기도가 당신에게는 그저 불협화음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까?”라는 등의 비판 댓글을 잇따라 올렸다.
최광백 동국대 총학생회장은 10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학내 구성원들의 뜻과 다르게 보광 스님이 총장직에서 퇴진을 안 하겠다는 입장은 유감”이라며 “동국대 구성원들의 의견을 잘못 짚고 있다. 학생들한테 잘못된 얘기를 하고 있다고 에둘러 말한 것 같은데, 그동안 대화 없이 일반적으로 입장을 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처신”이라고 말했다.
최장훈 동국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도 “동국대 구성원들을 기만하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보광 스님은 취임 전부터 논문 표절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 2월 동국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보광 스님 논문 30건 가운데 2건은 표절, 16편은 자기 표절’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보광 스님은 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했다. 하지만 동국대 이사회는 5월2일 보광스님을 신임 총장으로 임명했다. (▶ 관련기사 : 동국대 이사진 사퇴 결의…분규 해결 실마리)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이사장인 일면 스님과 총장인 보광 스님의 동반 퇴진을 요구하며 1일로 48일째 단식 중인 김건중(25·정외과 3) 동국대 부총학생회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