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에서 살인 및 살인미수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아무개 할머니가 지난 7일 오후 국민참여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대구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14일 경북 상주시 공성면 금계1리 마을회관에서 할머니 6명이 사이다를 마시고 쓰러져 2명이 숨졌다. 사이다 안에 누군가 몰래 살충제인 메소밀을 넣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마을회관에는 할머니 7명이 있었는데, 박아무개(82)씨만 사이다를 마시지 않았다. 경찰은 박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검찰은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박씨를 구속기소했다. 박씨는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박씨에 대한 재판은 지난 7일부터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고 있다. 보통 국민참여재판은 길어야 사흘이면 끝나지만, 이 재판은 11일까지 닷새 동안 이어지고 있다. 배심원 7명은 법정에서 보고 들은 정보와 설명을 바탕으로 11일 피고인 박씨의 유무죄 여부를 결정한다. 재판부는 이를 고려해 최종 선고를 내린다. 이 과정이 길어지면 선고는 14일로 넘어간다.
검찰은 박씨 집에서 메소밀 병과 메소밀 성분이 검출된 박카스 병이 발견된 것과 박씨의 옷·지팡이·전동휠체어 등 21곳에서 메소밀이 검출된 것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변호인단은 핵심 증거인 박카스 병에서 박씨 지문이나 유전자(DNA)가 나오지 않았다며 직접 증거는 없다고 주장한다. 또 박카스 병에 적힌 글씨가 번져 있는 등 사건 다음날 발견된 박카스 병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반박한다.
검찰은 재판에서 “박씨 집 입구에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설치돼 있으며 사건 당일부터 마을에 경찰관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박카스 병을 몰래 박씨 집에 버렸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10원짜리 화투를 치다가 좀 싸웠다고 수십년 함께 지내온 할머니들을 살해하려 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며 검찰이 밝힌 범행 동기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프로파일링 결과 박씨는 과거 남편으로부터 폭력 등에 시달려 분노조절이 어렵고 공감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맞섰다.
피고인 박씨가 할머니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50분 동안 마을회관에 있으면서도 119에 신고를 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건 당시 마을회관에 가장 먼저 들어갔던 마을 이장 ㅎ씨는 증인으로 출석해 “내가 두 손으로 마을회관 현관문을 열자 박씨(피고인)가 손잡이를 잡고 있었는지 딸려 나왔고, 들어가 보니 할머니 5명이 입에 거품을 많이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박씨가 신고를 안 하고 그냥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박씨가 나에게 사이다를 가리키며 ‘사이다 먹고 이리 됐다’고 알려줬다”고 말했다. ㅎ씨는 애초 경찰 조사에서는 “마을회관에 도착했을 때 박씨는 마을회관 밖에 있었다”고 했지만 이후 착각한 것이라며 진술을 바꿨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박씨가 휴대전화를 걸 줄 모르며 마을회관에서 쓰러진 할머니들의 입에서 나온 거품을 닦아주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살충제가 든 사이다를 마시고 쓰러졌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민아무개(83)씨는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그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화투를 치다가 피고인 박씨와 다툰 할머니다. 민씨는 “박씨가 생전 우리 집에 안 오다가 사건 당일 낮 우리 집에 찾아왔다가 마을회관에 갔다. 내가 사이다를 냉장고에서 꺼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피고인 박씨는 그동안 “민씨가 사이다를 냉장고에서 꺼내 왔다”고 진술해왔다.
대구지법 형사11부(재판장 손봉기)는 지난 7일 “백지 상태에서 지금까지 가졌던 선입견은 제외하고 현명하게 판단을 해주기 바란다”고 배심원들에게 당부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