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천광역시에 살고 있는 송재영(가명·54)씨는 2014년 3월1일부터 한 구청 소속 시설관리공단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지역에 있는 관광지구를 하루 8시간씩 청소하는 업무였다. 김씨는 탈없이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는 관리자의 말에, 원래 근무하던 웨딩홀 뷔페 일을 그만두고 직장을 옮겼다.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무작정 일을 시작한지 7개월여 만인 2014년 10월께, 공단은 김씨한테 ‘근로계약서’를 제시했다. 계약기간은 2015년 1월31일까지였다. 김씨는 “공단 쪽에서 재계약 않겠다고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래서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 그래도 안정적일 줄 알고 직장까지 옮겼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퇴직금도 안주려고 11개월만 쓴 것 같다”고 말했다. 공단은 그 뒤로도 ‘11개월 짜리’ 직원을 뽑아 거리 청소를 계속하고 있다.
#2 같은 공단에서 일했던 김갑환(가명·53)씨는 2012년 1월부터 공단 소유 공영주차장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1년짜리 근로계약이었지만, 열심히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을거라 믿었다. 실제 전체 공영주차장 관리직원 20여명 가운데 연차가 많은 직원들은 근무기간 2년을 넘겨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2013년 1월 근로계약이 만료되자, 공단은 6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제시했다. 6개월 근로기간 만료 뒤엔 3개월짜리 계약서였다. 그 다음은 2개월. 결국 김씨는 2014년 12월, 근무를 시작한지 23개월만에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일을 그만 뒀다. 김씨는 “선배들이 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 나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는데 뭐가 문제였는지 내 다음부터는 전부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잘렸다. 왜 하필 나부터인지 억울하기도 했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다른 직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4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서울·부산·인천 등 7대 광역 지방자치단체에서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한 ‘2013~2015년 기간제 근로계약 현황’ 전수조사 자료를 보면, 각 지자체들은 송씨나 김씨의 경우처럼 이른바 ‘쪼개기 계약’을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기간 동안 7대 지자체가 맺은 기간제 근로계약은 모두 4만1642건이었는데, 이 가운데 퇴직금 회피 목적 쪼개기 계약으로 강하게 추정되는 ‘10개월1일~11개월30일 계약’은 3790건(9.10%), 정규직 전환 회피 목적 쪼개기 계약으로 보이는 ‘1년10개월1일~1년11개월30일 계약’은 380건(0.9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경우를 합치면 4170건으로, 전체 기간제 근로계약의 10건 중에 1건 꼴이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솔선수범해야 할 공공부문이 쪼개기 계약을 통해 비용 절감에만 나서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행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원칙적으로 2년 이상 기간제 근로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은 기간제 근로기간이 2년을 넘긴 경우엔 곧바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것으로 본다. ‘쪼개기 계약’이란 이런 정규직 전환 부담을 피하기 위해, 2년 이하로 계약기간을 나누는 행태를 말한다. 쪼개기 계약은 퇴직금 지급을 회피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사용자는 1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한테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몇개월 단위로 근로계약을 쪼개는 것이다. 쪼개기 계약을 감내해야 하는 노동자는 고용불안을 피하기 어렵지만, 현행법상 이를 처벌할 규정은 없다.
쪼개기 계약을 활용하는 빈도는 지자체마다 편차를 보였다. 인천은 전체 5738건 가운데 1374건(23.95%)이 쪼개기 계약으로 추정됐다. 이어 광주(10.10%), 대전(9.89%), 대구(9.38%) 순이었다. 울산은 전체 4177건 가운데 쪼개기 계약이 165건(3.95%)에 그쳐 가장 낮은 비율을 보였다. 쪼개기 계약 비율이 인천에서 특히 높은 것은, 인천아시안게임·송도신도시 등 대규모 개발사업 등으로 부채가 폭등해 시 재정 상황이 열악한 탓인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각 광역시의 재정 대비 채무 비율(2014년 말 기준)을 보면, 인천은 36.1%로 부산(28%), 대구(27%), 광주(20.8%) 등과 비교해 격차가 큰 1위를 보였다.
문제는 이같은 쪼개기 계약 실태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 방침과 어긋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공공부문 상시·지속 업무 종사자는 3년 안에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정부는 2013년 9월 공공부문(중앙정부, 지자체, 공기업 등)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국정 과제로 정하고 2015년까지 기간제근로자 6만5711명을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김민주 공공운수노조 비정규전략조직부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개선해야 할 공공부문이 쪼개기 계약을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수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장 개편 대신,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라는 공약부터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쪼개기 계약은 이를 처벌할 법적 강제수단이 없는 일종의 탈법 관행인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지체되는 것은 사실 이런 ‘구멍’들이 곳곳에 뚫려있기 때문”이라며 “공공부문부터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화’라는 이미 공표한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는 ‘해고 없는 연말을’ 캠페인의 일환으로 지자체 쪼개기 계약 실태를 조사했다. 공공운수노조는 15일 오후 2시 기자회견을 열고 주요 쪼개기 계약 사례를 발표할 계획이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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