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철거 전 애기봉 등탑의 모습. 연합뉴스
보수-진보 기독교단체
“북한과 함께 점등할 때까지
등탑 불켜지 않겠다” 합의
“북한과 함께 점등할 때까지
등탑 불켜지 않겠다” 합의
“북과 함께 등탑을 켤 때까지 애기봉 등탑을 켜지 않겠습니다.”
보수 기독교계인 김영일 기독당 애기봉십자가등탑재건위원장(목사)이 말을 마치는 순간, 진보 기독교계 원로 문대골 목사가 무릎을 꿇고 “화합해주어 감사하다”며 큰절을 했다. 2010년부터 성탄절 무렵마다 격한 갈등을 빚어온 경기 김포시 애기봉에 5년 만에 평화가 깃든 순간이다.
21일 기독당 등 보수 기독교단체와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민통선평화교회 등 진보 기독교단체는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남북 평화의 등탑을 애기봉과 북한 해물마을에 동시에 지어줄 것을 양쪽 정부에 요구하고, 두 탑이 동시에 켜질 때까지 남쪽 애기봉 등탑을 점등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또 ‘동시 점등’ 이전까지는 양쪽 단체가 함께 애기봉 기도회를 여는 등 ‘애기봉의 평화’를 지키기로 다짐했다.
북한을 지척에 둔 애기봉은 2010년 재점등 이후 해마다 성탄절을 앞두고 갈등을 빚어온 곳이다. ‘불을 밝혀 북한에 기독 신앙을 전해야 한다’는 보수 교계와 ‘북한의 위협으로 민통선 주민들이 위험해진다’는 진보 교계·주민들이 대립했다. 북한은 애기봉 점등을 “모략선전용 도발”이라며 반발했다. 등탑은 2010년과 2012년에만 불을 밝혔지만 갈등은 매년 벌어졌다. 주민들은 보수 기독교인들이 탄 관광버스 밑에 들어가 점등을 막았고 이 과정에서 집시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적 민통선평화교회 목사는 “대북전단 살포와 애기봉 등탑은 대북 심리전”이라고 발언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겪기도 했다.
30m 높이 애기봉 등탑은 1971년 만들어진 뒤 성탄절을 즈음해 트리로 치장해 불을 밝히다 2004년 상호 비방을 중단하기로 한 남북 합의 이후 중단됐으나 연평도 포격사건을 계기로 2010년 12월부터 재점등하기 시작했다. 2014년 안전을 이유로 철거된 이후에도, 그 자리에 대형 성탄트리를 만들거나 등탑 재건을 주장하는 보수 기독교계와의 갈등이 지속돼왔다. 이번 합의는 “남북 모두에 평화의 등탑을 짓고 함께 켜자”는 이적 목사의 제안을 등탑 재건을 바라는 기독당 등이 수용하면서 이뤄졌다. 김영일 목사는 “기독교의 역할은 갈등이 아니라 대화와 평화라고 믿는다. 실향민들이 고향을 바라보며 기도해온 우리 애기봉과 북쪽 해물마을에 함께 평화의 등탑이 켜지길 바란다”고 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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