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훈민 진보네트워크센터 변호사. 사진 박태우 기자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헌법재판소가 주민등록번호를 바꿀 근거가 없는 현행 주민등록법은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주민등록법 7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다음날인 24일, 헌법소원을 대리한 신훈민 진보네트워크센터 변호사는 한껏 들뜬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강력한 ‘개인식별번호’로, 40년 동안 당연한 듯 굳어진 ‘주민등록번호 제도’에 첫 균열을 만들었지만 “민간·공공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주민등록번호의 사용처를 축소하고, 사용목적별로 식별번호를 부여하는 시스템으로 바꾸는 등 궁극적으로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얘기다.
이번 헌재 결정은 박정희 정권 때 도입된 ‘주민등록번호 제도’를 바꾸자는 정보인권단체 진보네트워크센터 등의 10년 운동 ‘성과’다. 간첩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번호만으로도 생년월일·성별·출생지역을 알 수 있는데다, 범죄수사나 동사무소 민원, 휴대전화 개통까지 안 쓰이는 곳이 없는 탓에 ‘빅브러더’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정보인권단체들의 주장이었다. 이런 가운데, 금융·통신사 등에서 주민등록번호 등 최대 1억3000만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면서 시민들도 이런 운동의 필요성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2008년엔 ‘주민등록번호를 바꿔달라’는 민원운동을 벌이고, 2011년 에스케이컴즈·옥션 정보 유출 사건을 계기로 행정소송에 나선 데 이어 지난해 카드3사 정보 유출 때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소원 청구 당시 시민들은 소송비용 마련을 위해 200여만원을 모금해주기도 했다.
헌재의 결정 가운데 신 변호사가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주민등록번호가 단순히 개인식별번호에서 더 나아가 (중략) 개인정보를 통합하는 연결자로 사용되고 있다’며 ‘개인에 대한 통합관리의 위험성을 높이고 개인을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국가의 관리 대상으로 전락시킬 위험성이 있다’고 한 부분이다. 신 변호사는 “헌재의 결정 자체는 번호를 변경 가능하도록 한 것이지만, 전반적인 취지는 번호 제도 자체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행정자치부가 만든 주민등록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개정안은 번호가 유출돼 신체·재산상 피해를 입었거나 입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거나, 성폭력 범죄 피해자가 번호 변경을 하고 싶을 경우 시장·군수·구청장에게 변경을 신청하고, 이를 다시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에 부쳐 변경하도록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신 변호사는 “재산상·신체상 피해를 어느 정도로 인정할 것인지도 판단이 어렵거니와, 어렵게 변경 대상이 되더라도 생년월일·성별·출생지역을 알면 번호를 역으로 조합해 만들 수 있어 변경의 실익이 적다”며 이 개정안은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예 번호를 통해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임의번호로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취지가 담긴 것이 지난 5월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주민등록번호에 생년월일·성별·지역 등 개인의 고유한 정보가 포함되지 않은 임의 번호를 부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아 발의한 개정안이다.
신 변호사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만들었던 주민등록번호 제도를 정보화와 인권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게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개편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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