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대장
영화 <히말라야>를 봤습니다. 한참 눈물을 흘렸습니다. 옆자리에 있는 중년의 아저씨도, 뒷자리의 아저씨도 다들 한 손은 얼굴에 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눈물을 몰래 닦으려고 그런 자세를 취했을 것입니다.
특히 주말에 산을 다니는, 산을 좋아하는 이들은 이 영화가 주는 크고 작은 울림에 약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가보지 못한 8천m 고산에 대한 동경과 함께 산사나이들이 풍기고, 나누는 그런 냄새에 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인으로, 네팔의 산간 마을에 학교를 지어주며, 산사나이로서의 멋진 모습을 보여준 영화의 실재인물 엄홍길(55) 대장의 인간미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게 됐습니다.
저는 지난 주말 북한산에 가서 내려오다가 오른발을 삐었습니다. 지난해 지리산에 갔다가 하산길에 접질렸던 오른쪽 발목인데, 쉬운 내리막길에서 다시 접질리고, 그 통증에 한동안 나자빠져 있었습니다. 산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인간이라는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신체적 조건을 가진 동물이 8천m급 고산에 오른다는 것은 생명을 담보할 만큼 위험한 일일 것입니다.
문득 김창호(46) 대장이 떠오릅니다. 그는 8천m급 14좌를 산소마스크 없이 모두 오른 ‘초(超)인간’입니다. 산소통도 없이, 지상의 산소량 3분의 1에 불과한 희박한 공기를 마시며 그렇게 높은 산을 오른다는 것은 아마도 인류가 태어난 이래 가장 심폐 능력이 뛰어난 ‘별종 인간’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를 취재할 때 유심히 살피며 질문을 던졌습니다. “남들보다 어떤 점이 뛰어나길래…”
그는 의학적인 검사를 해보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다만 잠수 능력은 뛰어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해병대에 입대해 그 힘들다는 특수수색대에 자원했답니다. 자격시험에 잠수가 있었습니다. 얼마전 텔레비전의 <진짜사나이>에서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한계 잠수 시간은 1분. 남들은 1분도 어려운 잠수를 그는 동료보다 3배가 넘는 3분 10초 동안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조금 연습하면 3분30초 동안 물속에서 머물렀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선 물속에 들어가면 눈을 감는다고 합니다. 눈을 뜨면 눈에서 시력을 유지하며, 에너지와 함께 몸속에 있는 산소를 쓰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또 한가지는, 쉬운 방법은 아니지만, 무념의 상태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가능한 어떤 생각도 하지 않으면 두뇌가 활동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산소를 덜 쓴다는 것입니다. 인간 에너지는 20%를 사용하는 두뇌이기에 물속에 들어가 그 활동량을 인위적으로, 최소한으로 만들면 숨이 덜 찬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무념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은 많은 훈련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도 8천m급 고산에 올라간다는 막연한 희망과 기대를 갖고 평소 무념무상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연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비록 8천m급은 아니더라도 4천~5천m 급은 넘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몇년 전 안나프루나 트래킹을 간 적이 있습니다. 3200m 정도의 푼힐 전망대에서 보는 히말라야의 일출은 ‘압권’이었습니다. 황금빛 햇살과 웅장한 산맥의 조용한 꿈틀거림, 그리고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으로서의 존재감.
세월이 흘러도 그 당시의 멋지고 황홀한 광경은 뇌리에 너무 깊이 박혀 털어내기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친구들과 계를 들었습니다. 한 달에 3만원씩 부어서, 그 언젠가 히말라야의 품에 안길 때 여비로 쓰기로 했습니다.
저와 주말 산행하는 친구 가운데는 김영주 <중앙일보>기자가 있습니다. 그도 기자세계에서는 ‘초인간’입니다. 14개 히말라야 8천m급 고산의 베이스캠프를 섭렵했습니다. 얼마 전 그와 단둘이 북한산을 올랐습니다. 객기가 발동해 쉬운 암벽을 탔습니다. 의상봉 코스였습니다. 중간까지는 제가 앞서가다가 중간 이후부터는 그가 선등했습니다. 도중에 제가 오토바이를 탔습니다. 여기서 ‘오토바이’는 오도가도 못하고 달달 떠는 상황입니다. 두 번 그런 상황에서 그 기자는 손을 내밀어 저를 들어올렸습니다. 엄청난 괴력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제 ‘생명의 은인’인 셈이죠.
그가 쓴 <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 트레킹>이란 책은 히말라야의 맛을 보려는 아마추어 산악인들에겐 멋진 입문서입니다. 주말 산악인들에겐 베이스 캠프 트레킹만 하더라도 히말라야의 깊은 맛을 조금은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부어오른 오른발 복숭아뼈가 야속하기도 하지만 미안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힘들게 무리하게 재촉했으면, 그 뼈와 인대가 비명을 질렀을까요? 새해 첫 일출은 산에서 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김창호 대장
히말라야
히말라야
히말라야
김영주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