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짬] 관악사회복지 이사장 조흥식 교수
‘빈민 연구’ 박사된 뒤 교수로 다시
95년 ‘재개발’ 맞서 복지법인 결성 지난달 창립 20돌 주민들 연극 ‘감동’
어르신 된 회원들 직접 강의도 인기
“갈곳 없는 이들 서로 의지하는 공간” “재개발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처지에 처한 빈민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자는 취지로 모임이 결성됐지요.” 단체가 출범한 1995년은 ‘난곡’이라고 불리던 신림7동 달동네 주민들이 재개발 소용돌이에 휩싸이던 시기였다. 그해 6월엔 주민들이 직접 시장·구청장을 뽑았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중단된 지방자치 제도가 제 모습을 갖춘 것이다.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인 관악구 난곡지역에서 빈민운동이 태동한 것은 70년대였다. 종교단체 활동가나 대학생들이 탁아방이나 공부방, 야학을 열어 빈민들의 자녀를 돌봤다. 이들은 90년대 지방자치제 시행과 대규모 재개발이란 외적 계기를 만나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1995년 몇 개월의 시차를 두고 풀뿌리 지역운동 조직인 ‘관악주민연대’와, 빈민복지를 내건 ‘관악사회복지’가 결성됐다. “(민주화가 시작된) 87년 체제와 겹치면서 당시 난곡지역의 한쪽엔 운동권, 또다른 쪽엔 투기꾼들이 모여들었죠.” 난곡 재개발사업은 1995년 지구 지정이 된 뒤 2003년 시행에 들어가 2006년 마무리됐다. 난곡의 오랜 빈민운동가인 김혜경 당시 구의원, 송경용 성공회 신부 주도로 조 교수와 박승한 현 운영위원장이 참여해 결성된 관악사회복지는 현재 상근 활동가 6명, 주민 활동가 100명, 회원 500명으로 훌쩍 자랐다. 청소년부터 어르신까지 모두 8개의 주민모임이 활동하고 있다. 카페, 복합문화공간, 친환경매장 등 쓰임새가 각기 다른 주민사랑방도 5곳이나 된다. 2002년 삼성동 시장에 주민 출자로 문을 연 사랑방은 당시 손님이었던 주민 13명이 활동가가 되어 지금껏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단체의 미래 비전을 모색하는 워크숍엔 고교 1학년부터 8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 80명이 참여해 토론을 벌였다. “지역사회복지론 교재에도 우리 활동이 소개되어 있지요.” 지난 20년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어르신 회원의 증가다. “초기엔 한 분도 없었죠. 지금은 200명이나 됩니다. 동네마다 어르신 조직이 있어요. 놀 곳이 마땅치 않은 가난한 노인들이 모여서 연극도 하고 하모니카도 불지요.” 1년에 2~3번 어르신들 대상 강의도 하는데 지금은 어르신 회원이 직접 강의를 하기도 한다. “삶의 지혜가 깃든 강의여서 인기가 있지요.” 달동네가 아파트 단지로 변하면서, 빈자들은 대부분 하늘 아래 높은 동네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아파트 단지 아래 3~4층짜리 주택 반지하나 옥탑방에 살지요. 서울의 빈민들 대부분이 그래요.” 달동네가 사라졌으니 빈자들의 삶도 달라졌을까? “예전엔 환경은 좋지 않았지만 정이 흐르고 서로 도왔어요. 지금은 가족 해체가 심각합니다. 아이들이 떠난 나이든 부모들이나 장애인 가족들이 동네를 지키고 있죠.” 복지예산이나 행정 역시 20년 사이 많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주민 중심의 복지활동이 필요한 이유는? “동네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모이면 시끄럽다고 주민들이 항의합니다. 우리 단체는 갈 곳이 없는 빈자들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고리 구실을 하지요.” 조 교수는 생존 욕구 충족이 복지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물질적인 것만으로 행복한 생활이 되는 게 아니죠. 인간은 생존과 인간 관계성 충족이라는 두 가지 욕구가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조 교수가 난곡과 맺은 인연은 대학 4학년 때인 1975년으로 올라간다. 서울대 관악캠퍼스 이전 첫해, 그는 난곡에서 1년 동안 야학을 했다. 동료 학생 20여명과 함께 했는데, 4학년은 그가 유일했다고 회고했다. 1991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뒤 자연스레 난곡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청주대 교수 재직 시절인 1990년 서울대에서 ‘청주지역 빈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풀뿌리 복지운동을 하면서 기장 기억에 남는 활동을 물었다. “고 김한경 성공회대 교수가 2대 이사장일 때 대학원생들이 팀을 꾸려 가정방문 상담 서비스를 했어요. 빈곤한 사람들의 일상을 묻고 필요하면 구청이나 교회, 민간단체에 도움을 청했지요.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가 이사장이 된 뒤 직접 기획한 ‘상상력 강좌’도 이제 주요 프로그램이 됐다. 이제는 주민들이 직접 논의해 프로그램 주제와 강사를 선정한다. 복지전문가인 그에게 복지정책 가운데 개선이 필요한 대목을 물었다. “국가가 소득을 직접 보장해주는 비율을 높여야 합니다. 우리는 3.5%이지만 다른 나라들은 10% 정도 됩니다. 자녀가 있으면 수급자에서 제외하는 부양의무자 제도나 집을 소득으로 간주하는 재산소득환산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더해 가난한 이들의 관계성 욕구를 충족해주는 복지서비스 제공에도 국가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 교수는 지적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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