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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212번째…대답은 없지만 “헛되지 않았다”

등록 2016-01-06 19:50수정 2016-01-08 00:42

24주년 수요시위의 기록들

1992년 7번째부터 할머니들 참여
2001년 447차는 초등생들이 주최
600차 세계 30곳서 공동 행동
이후 100단위마다 세계 연대 시위
“새해가 되고 내가 계속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저 아이를 보며 마음먹었습니다. 생글생글 웃는 어린 학생들, 후손들에게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제가 끝까지 해결할 겁니다.”

6일 이용수(88) 할머니는 ‘소녀상 이전 앙돼요’라고 스스로 그려 온 손팻말을 든 송주희(7)양을 바라보며 말했다. 해방 이후 47년 동안 침묵 속에 갇혀 있었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수요일마다 전해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수요시위)가 이날 1212번째 열리며 24년을 맞았다. 1992년 1월8일 여성단체들이 꾸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일본대사관을 돌며 외쳤던 일본 정부의 인정과 사죄,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추모비 건립, 법적 배상, 역사 교육 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20년 넘게 할머니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여성의 문제, 평화의 문제, 소수자의 문제를 세계에 화두로 던져온 수요시위는 헛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부끄러운 소수자에서 평화운동가로

할머니들은 1992년 2월 7번째 수요시위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오시거나 뒤에 숨어 낯설어하셨죠.” 양미강 정대협 전 총무가 회상하는 초창기 수요시위 할머니들의 모습이다. 지나가는 시민들의 냉대도 상처가 됐다. 윤미향 대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데모한다’며 할머니들에게 소리치는 시민들을 보면서 가슴이 섬뜩하게 내려앉았다. 힘겹게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신 분들이 또다시 숨어들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1년 정도 수요시위가 반복되고부터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윤미향 대표는 “점차 자신들의 한을 풀어내시더니 이후 평화를 말하고 소수자들을 감싸는 모습으로까지 변하셨다”며 “1990년대 중반 한 에이즈 환자가 할머니들을 찾아와 ‘나도 나 스스로가 부끄러워 나서지 못했는데 할머니들의 모습에 힘을 얻었다’고 이야기하자 할머니가 그를 따뜻하게 안으셨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 아이부터 외국인까지 전세계의 연대

2001년 2월14일 열린 447차 수요시위의 주최자는 ‘남성초등학교 6학년 2반’이었다.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준비해 만든 수요시위였다. 담임을 맡았던 최종순(58) 교사는 “할머니들의 삶을 알아가고 수요시위를 준비하며 학생들도 배우고 나도 배웠던 시간”이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최 교사는 “학생들이 직접 그려 사람들에게 나눠준 만화가 특히 ‘인기 폭발’이었다”며 웃었다. 만화에는 ‘제대로 된 역사를 알리기 위해 수요시위를 여는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전세계적인 연대도 수요시위가 만들어낸 진풍경이다. 600차 수요시위가 세계 30개 지역에서 함께 열린 것을 시작으로 각 100단위의 수요시위와 광복절 즈음의 수요시위에는 당대의 여성문제를 제기하며 전세계적인 공동 행동이 이뤄진다. 한국과 일본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규탄하기 위해 이날 수요시위도 세계 40개 도시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정의로운 해결 세계행동’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열렸다.

■ 당할 때마다 이슈를 넓혀간 ‘오뚝이 같은’ 수요시위

양미강 전 총무는 교과서 파동이 있던 2001년 451차 수요시위를 떠올리며 수요시위를 ‘오뚝이 같은 운동’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피해자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때에 일본 후소샤 교과서 문제가 터졌다. 하지만 그때를 계기로 우리의 운동이 ‘미래세대를 위한 운동’이라고 보고 교과서 제작을 시작했다”고 했다. 이후 위안부 피해자 운동은 한·일 공동 여성사를 기술하는 등 역사운동으로 발전했다. 1990년대 일본이 제시한 민간 차원의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에 대해 수요시위에 나온 할머니들이 거부 목소리를 내면서 단순히 돈이 아닌 명예와 인권의 문제 제기로 수요시위가 발돋움하기도 했다. 윤미향 대표는 “이번 한-일 간 합의 역시 아프지만, 전국민적인 성원이 모이는 상황을 보며 또다른 전화위복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준호 고한솔 황금비 기자 whorun@hani.co.kr

관련영상 : 위안부 합의 파문, 누리과정 보육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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