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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집 나온 16살이 밤 지새울 곳은 24시 카페뿐이었다

등록 2016-01-11 19:37수정 2016-01-12 14:21

<b>7일 밤 10시, 카페 흡연실</b> 집을 나온 청소년 6명이 추위를 피해 24시간 운영하는 카페에 들어와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7일 밤 10시, 카페 흡연실 집을 나온 청소년 6명이 추위를 피해 24시간 운영하는 카페에 들어와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르포/ 거리의 아이들과 동행한 하루
“나, 내일 아침엔 어딜 가지? ×발, 갈 데가 없네.”

올해 16살이 된 지성이(가명)는 지난해 여름 집을 나왔다. ‘아는 형’ 방에 얹혀살다가 청소년 쉼터에 들어갔지만, 얼마 전 담배를 훔치다 경찰 조사를 받는 등 규정 위반을 해 쉼터에서 퇴소당했다. 갈 곳이 없어진 지성이는 다시 아는 형 방에 들어갔지만, 오늘 밤엔 정말 그 방에 가기가 싫다. 요즘 들어 부쩍 찾아오는 형의 어머니가 얹혀 지내는 지성이에게 핀잔을 주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오늘은 24시간 문을 여는 카페행이다. 돈도 없고 ‘민증’도 없는 지성이가 영하의 강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다. 찜질방이나 피시방엘 가면 좀 더 편히 쉴 수 있겠지만, 찜질방 등은 밤 10시가 넘으면 청소년의 출입을 제한한다. 지성이가 카페에서 밤을 새운 건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엊그제도 새벽 2시까지 카페에 있다가, 아는 형들 따라 ‘텔’(모텔)을 잡았어요. 5명이 3만원을 모아서요.” 주머니에 동전 한 닢 없는 지성이는 오늘 밤에도 24시 카페에서 밤을 지새울 생각이다.

밤 되자 청소년 대여섯이 카페로
줄담배 나눠피며 스마트폰 만지작

강원도서 가출한 16살 수빈이
“이제 돈 벌어요”하자 옆 친구가
‘계약 조건만남’이라 기자에 귀띔

20살 된 민재 “나 할아버지 때렸어
근데 할아버지도 날 6살때부터
각목으로 수시로 때렸다”

16살 지성 “내일 어디 가지, 어디 가지…”
돈 생긴 민재가 사준 라면·김밥 먹고
“오늘 세끼나 먹었다” 서글픈 자랑

<b>7일 밤 12시, 카페 3층</b> 아이들은 직원이 자주 오지않는 카페 3층 구석 탁자에 자리를 잡고 두시간째 하릴 없이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다.
7일 밤 12시, 카페 3층 아이들은 직원이 자주 오지않는 카페 3층 구석 탁자에 자리를 잡고 두시간째 하릴 없이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다.

■ 밤 10시, 24시 카페로 모여드는 아이들

서울 관악구 지하철 2호선 신림역 인근에는 ‘24’라는 숫자가 적힌 형광색 네온사인 간판을 단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이 즐비했다. 대부분 2, 3층 규모다. 지난 7일 밤 10시, 지성이와 또래 청소년 대여섯명이 한 커피전문점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지성이처럼 나머지 아이들도 가출 청소년, 영하 7도까지 기온이 떨어진 이날 무리에 섞인 한 아이는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b>8일 새벽 1시, 카페3층</b> 지난해 여름 집을 나온 지성이는 제 집인냥, 카페 소파에 놓인 소품 쿠션을 베고 누워버렸다.
8일 새벽 1시, 카페3층 지난해 여름 집을 나온 지성이는 제 집인냥, 카페 소파에 놓인 소품 쿠션을 베고 누워버렸다.
카페에 들어선 아이들은 곧장 흡연실로 직진했다. 줄담배를 나눠 피우던 수빈이(16)는 중3이던 지난해 강원도 고향 집을 나와 무작정 서울로 왔다. 수빈이는 “우연히 알게 된 ‘4명의 오빠’들과 5평(16.53㎡)짜리 원룸에 살고 있다”고 했다. 부모님은 집 나간 수빈이를 찾지 않았다. “집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입 하나 덜었다고 생각하겠죠.” 차갑게 말하던 수빈이는 이내 “이제 내가 직접 돈을 벌어서, 원룸 월세 42만원도 직접 낸다”고 뽐냈다. “‘아는 오빠’ 컴퓨터 관리해주면서 하루에 6만원씩 받아요. 그 오빠 원룸으로 매일 출근하면 한 달에 100만원, 200만원쯤 벌어요. 출근 안 해도 그 오빠가 돈을 주고요.” 알듯 말듯 한 수빈이의 고수익 아르바이트, 옆에 있던 아이는 “계약 조건만남을 한다는 얘기”라고 귀띔해줬다.

■ 자정, 집에서 받은 상처 또래들과 풀다

밤이 깊어지자 카페엔 또래 청소년 하나가 더 찾아왔다. 아이들은 카페 직원이 잘 오지 않는 3층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저마다 각자의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시간을 죽였다. 이따금씩 올라온 카페 직원은 탁자와 의자를 정돈할 뿐, 아이들에게 이렇다 할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힐끗 쳐다보고 내려가는 게 다다.

<b>8일 새벽 2시, 동전노래방</b> 카페가 지루해진 지성이와 민재는 인근의 무인 동전노래방에 갔다. 아이들은 500원짜리 동전 3개를 넣고 20분간 노래 6곡을 불렀다.
8일 새벽 2시, 동전노래방 카페가 지루해진 지성이와 민재는 인근의 무인 동전노래방에 갔다. 아이들은 500원짜리 동전 3개를 넣고 20분간 노래 6곡을 불렀다.
스마트폰 갖고 놀기에도 지쳤는지, 아이들은 함께 모여 수다를 떨었다. “나 닷새 전에 할아버지 때렸어. 그런데 할아버지도 나 여섯살 때부터 때렸거든! 각목으로. 아빠랑 헤어진 엄마를 닮았다면서 나를 때렸어. 할아버지를 경찰에 고소하고 집 나와 버렸어.” 고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과 귀가를 반복했다는 민재(가명·20)는 닷새 전 또다시 집을 나왔다. 민재의 아빠와 엄마는 각각 재혼해 새 아내, 새 남편과 살고 있다.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민재의 가슴엔 상처투성이다. 다니던 학교는 3년 전 자퇴해 버렸고, 집을 나온 뒤엔 배달, 요리, 연예기획사의 아이돌 가수 연습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잠자코 민재의 얘길 듣던 지성이도 속 얘길 쏟아냈다. “우리 아빠도 골프채로 나 맨날 때려. 집에 들어가기 싫어. 엄마는 잔소리해. 집보다 여기가 몇 만 배는 더 편해.” 민재와 지성이는 이날 청소년센터에서 처음 만난 사이지만, 오랜 친구처럼 말이 통했다. 한참을 그렇게 떠들던 아이들은 카페 벽에 몸을 기대거나 장식용 소품인 쿠션을 베개처럼 베고 소파에 가로누웠다.

■ 새벽 2시, 갈 곳이 없다

시계가 새벽 2시를 가리키자, 수빈이와 함께 몰려왔던 아이들이 몸을 일으켜, 자신들의 아지트인 5평짜리 원룸으로 돌아갔다. 카페엔 갈 곳 없는 지성이와 민재만 남았다. 수다가 지루해진 둘은 카페를 나와 추운 거리를 마냥 걷기 시작했다. 가을 등산점퍼 차림의 지성이와 여름용 스니커즈에 조끼만 입은 민재가 투덜거렸다. “×나 춥네, ×발.”

“동전노래방에 갈까.” 시린 손을 비비며 민재가 말했다. 500원이면 두 곡을 부를 수 있는 무인 동전노래방엔 눈치 주는 사람도 없고 잠시지만 겨울 바람도 피할 수 있다. 둘은 가진 동전 3개를 털어넣고, 돌아가면서 20분간 노래 여섯 곡을 불렀다. 노래가 끝난 뒤 하염없이 거리를 걷던 아이들은 24시간 문을 여는 햄버거 패스트푸드 매장 등을 기웃거렸다.

가게 안엔 햄버거 쟁반 하나만 올려놓고 홀로 앉아 있는 아이들이 유난히 많았다. “저기 쟤, 아까 밥차(청소년 대상 무료 급식차)에서 만난 애 아냐?” 지성이와 민재는 혼자 앉아 있는 10대 여자아이를 가리켰다. “쟤도 집 나왔나?” “그럴걸.” “예쁘다.” “쟤 아는 남자애 엄청 많대.” 지성이와 민재가 홀로 앉은 또래 여자아이를 두고 수군거리다가, 자리가 마땅치 않은지 다시 가게 밖으로 나선다. 아이들은 아까 머물던 카페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음료는 주문하지 않고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새벽에 저런 아이들이 종종 와요. 매장도 한가하니까 굳이 뭐라고 하지 않아요.” 주문대 앞에 선 직원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 얘기했다.

■ 새벽 4시, 오늘은 또 어디로…

<b>8일 새벽 4시, 카페2층</b> “나, 내일 어디가지”라고 끊임없이 중얼대던 지성이는 새벽 4시가 되자 카페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8일 새벽 4시, 카페2층 “나, 내일 어디가지”라고 끊임없이 중얼대던 지성이는 새벽 4시가 되자 카페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아~. 내일 아침엔 또 어딜 가지?” 탁자에 쿠션을 놓고 그 위에 엎드린 지성이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성이는 10분에 한 번꼴로 같은 말을 했다. “배고픈 건 참을 만한데, 추워서 자는 게 제일 문제야. 카페가 따뜻하고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어서 와 있지만 사람 많아지는 아침이 되면 또 갈 데가 없잖아요.” 지성이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기자쌤, 저랑 같이 피시방 가주면 안 될까요?” “찜질방 가서 자게 보호자 좀 해주세요.” “쌤 방에서 열흘만 재워주시면 안 돼요?” 지성이는 묻고 또 물었다. 미성년자인 지성이는 밤 10시 이후엔 피시방이나 찜질방에서 나와야 한다. 가출 청소년 지성이가 갈 데라곤 24시 카페뿐이다. “난 이제 어디든 들어갈 수 있지~.” 스무살 생일을 일주일 남짓 넘긴 민재가 짐짓 자랑을 했다. “지성아, 너 그냥 다른 쉼터 들어가. 학교 안 다니고 집 나온 애들은 웬만하면 다 받아줘.” 민재의 이 조언을 지성이가 날카롭게 받아쳤다. “자리 다 차서 대기 타야 돼요. 그리고 밤 9시 통금 있잖아요. 9시에 들어가면 맨날 앉혀놓고 상담만 한다고요.” 잠시 뒤, 지성이는 카페 소파에 누워 곯아떨어졌다.

■ 새벽 6시, “오늘 밥 세 끼나 먹었다”

<b>8일 오전 6시, 신림역 계단</b> 카페를 나온 지성이와 민재는 인근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고 다시 무인 동전노래방으로 향했다.
8일 오전 6시, 신림역 계단 카페를 나온 지성이와 민재는 인근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고 다시 무인 동전노래방으로 향했다.
카페에서 뒤척이던 민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한때 사귀던 ‘전 여친’”이라고 했다. 전 여친은 민재에게 지금 함께 게임을 하자며 컴퓨터에 접속하라고 했다. “피시방 갈 돈이 없다”는 민재의 말에 전 여친은 곧장 민재 통장으로 3만원을 보내줬다. 돈이 생겨 들뜬 민재는 카페 탁자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애랑 다시 잘 해볼 생각 없어요. 3만원으로 노래방 갈 거예요.”

길고 긴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왔다. “아무 데나 누워 자고 싶다”는 지성이를 이끌고 민재는 근처 분식집에 들어갔다. 라면 두 그릇과 김밥 한 줄을 시켰다. “와, 어제오늘 밥 세 번이나 먹게 되네. 3일 만에 한 끼 먹은 적도 많은데…. 오늘은 세 끼나 먹었다! (청소년) 센터에서 컵라면 먹고, 밥차에서 떡국 먹고, 분식집 오고….” 지성이가 자랑하듯 말했다. 지성이와 민재에게 오늘은 밥도 먹고 돈도 생긴 운수 좋은 날이다.

글·사진 김미향 황금비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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