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교형씨
[짬] ‘찾는이 광명교회’ 목사 구교형씨
주3일 6개월째 가리봉동 ‘택배기사’
“목사인 줄 알면 기도해달라고 하죠” 초등학교 때 ‘성탄절 쌀 선물’에 감동
온가족 교회 나가며 기독교 입문
“약한 자와 함께 하는 교회개혁 위해”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아버지는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 금은방을 하다가 망해서 가난에 허덕였다. 어머니가 파출부 일을 해서 생계를 이어갔다. 마침 성탄절이었다. 셋집 주인아주머니가 방문 앞 마루에 쌀을 놓고 갔다. 기독교인인 그 아주머니는 세를 사는 가난한 이웃에게 교회에서 준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달한 것이다. 부모는 거의 통곡을 하며 고마워했다. 그때까지 교회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가족들은 ‘하나님에게 빚을 졌다’는 생각에 모두 교회에 다니기로 했다. 아버지는 1년 뒤 저세상으로 가셨다. 그는 교회를 꾸준히 다녔다. 아버지의 유언이기도 했다. 철학과를 졸업했으나 세상에 대한 고민은 풀리지 않았다. “만약에 이 세상이 하나님의 작품이라면, 그 작품을 더 잘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신학대에 다시 입학했다. 실천적인 신앙운동을 하고 싶었다. 사회변혁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종교부문 간사를 맡기도 했고, 종교계의 남북한 나눔운동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교회는 힘없고 약한 자들의 이웃이 되지 못했다. 교회개혁을 위한 운동에 나섰다. 스스로 교회를 개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많은 혜택을 받으며 살아왔다는 자책감이 들었어요. 서민들의 아픔과 애환을 경험해야 올바른 목회자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어요.” 마침 그의 교회 신자 중에 택배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까데기’ 담당이었다. 까데기는 대형 화물트럭에 싣고 온 택배 물건을 내리는 일이다. 근력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래서 구 목사는 배달을 하기로 했다. 담당 지역에 배당된 택배 물건의 주소를 확인하고 분류하는 데만 한나절이 다 걸린다. 조선족 동포들과 한족들이 많이 사는 가리봉동이기에 소통도 쉽지 않다. ‘진상 고객’들도 있다. 이것저것 트집잡으며 ‘갑질’을 한다. 참아야 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다 실패해 20년 동안 택배 일을 하는 60대 동료는 ‘치아가 다 삭았다’고 한다. 참기 위해 이를 악무는 버릇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엔 목사라고 밝히지 않았는데 우연히 알려졌어요. 다들 거리감을 둘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가까이들 다가왔어요.” 나이 지긋한 동료 택배기사는 아침마다 그를 포옹하며 “힘을 주세요. 기도 부탁합니다”라며 즐거워한다. 결혼을 앞둔 30대 택배기사는 그에게 주례를 부탁하기도 했다. “교회를 멋있게 꾸며야 신도가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서민들과 함께하는 경험과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설교가 교인들을 부를 것입니다.” 그는 현재 목사의 겸직을 금하는 교단 헌법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체 개신교회의 70%가 자립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단이 이중 직업을 가진 목사들을 손가락질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건물 청소하는 목사도 있어요. 과외교사, 공공근로, 퀵서비스, 우유나 녹즙 배달하는 목회자도 많구요. 목사 사모 역시 식당 종업원이나 파출부로 생계를 이어가죠.” 구 목사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직업은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목회자들도 이제는 떳떳하게 세금을 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소형 화물차에서 택배 물건을 내리는 그의 옷깃 사이로 매서운 겨울바람이 비집고 들어온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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