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백혈병’ 문제와 관련해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에서 재해 예방대책에 대한 조정위원회 권고안 합의 서명식을 마친 참석자들이 악수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백수현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전무, 김지형 조정위원장, 송창호 ‘삼성 직업병 가족대책위’ 대표, 황상기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교섭단 대표. 황씨는 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에서 근무하다가 급성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황유미씨의 아버지다. 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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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에서 근무했던 황유미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숨진 뒤 9년 가까이 갈등이 지속돼 온 ‘삼성 백혈병 논란’이 처음으로 재해예방을 위한 외부독립기구 설치라는 합의에 이르렀다.
12일 삼성전자와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 등 3개 협상주체는 ‘재해예방대책’에 대한 조정위원회 권고안에 최종 합의했다. 합의안에 따라 직업병 발병을 예방하기 위한 외부 독립기구 ‘옴부즈만 위원회’가 설립돼 작업환경 유해인자에 대한 종합진단이 실시될 예정이다. 조정위는 이철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옴부즈만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옴부즈만 위원회는 앞으로 최장 6년 동안 삼성전자의 작업환경 및 노동자 건강관리체계에 대한 종합진단을 실시하고, 이를 토대로 작성된 개선안의 이행을 점검할 예정이다. 위원회 활동에는 작업환경 유해인자 실태조사 및 직업병 의심사례 심층조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도 노동자를 위한 ‘건강지킴이센터’를 신설하는 등 내부 재해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기로 했다. 보건관리팀은 임직원 정기검진을 통해 고위험군 징후가 발생하면 맞춤형 진단과 치료에 나설 예정이다. 또 사업장에서 사용되는 화학제품에 대해서도 무작위 샘플링 조사를 하기로 했다.
‘삼성 백혈병’ 논란은 2013년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교섭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힘겨루기’ 국면에 들어섰다. 이후 삼성전자 제안에 따라 2015년 초 조정위가 설립됐다. 조정위는 지난해 7월 1000억원 규모 공익재단 설립을 뼈대로 한 1차 조정권고안을 내놨지만, 삼성전자 쪽은 공익재단 설립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를 밝히며 독자 보상위원회를 꾸려 보상절차에 들어섰다. 조정위는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보상’ 분야를 제외하고 ‘예방’ 의제에 집중해 2차 조정권고안을 제시한 셈이다. 김지형 조정위원장은 “사과와 보상 등 나머지 의제에 대해서도 조정 주체의 정리된 입장을 들은 뒤 추가 조정 방안 등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합의에 대해서는 교섭 주체 사이에서 다소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삼성전자 교섭단 대표인 백수현 전무는 “오랫동안 묵어왔던 문제가 대화를 통해 합의에 이른 것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한다”며 “모든 당사자가 합의 정신을 잘 이행해나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삼성은 사과·보상 문제와 관련해 “현재 100여 피해자 가족을 대상으로 보상절차가 진행되고 있으며, 피해자 가족들에게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올림의 교섭단 대표인 황상기(황유미씨의 아버지)씨는 “딸이 병에 걸린지 10년이 넘었는데 이제 겨우 재발방지 부분에 대해서만 이야기가 됐다”며 “삼성이 반올림과 대화해서 보상과 사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삼성 본관 앞에서 농성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올림 쪽은 삼성이 직업병 책임을 인정하는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외부 독립기구를 통해 보상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