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 집유 구미 KEC 노조원 68명
법원서 “채취 위해 출석” 요구서
“사안 고려하지 않은 처사” 비판
법원서 “채취 위해 출석” 요구서
“사안 고려하지 않은 처사” 비판
경북 구미의 반도체회사 케이이시(KEC)에 다니는 노동자 황아무개씨는 지난해 봄 대구지검 김천지청으로부터 ‘황당한’ 우편물을 받았다. 6년 전 ‘공장점거’ 파업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사태로 집행유예를 받았으니 디엔에이(DNA)를 채취해야 한다며 검찰로 출석하라는 안내문이었다.
황씨가 다니는 회사 노조는 당시 타임오프제 시행 등에 반대해 파업을 했다. 회사는 직장폐쇄를 하면서 650여명의 경비용역을 고용해 기숙사까지 치고 들어오는 등 강경대응에 나섰다. 직장폐쇄를 막기 위해 노조원들은 공장 점거를 하겠다며 공장 진입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경비용역과 회사 관리자 일부가 다치고 회사 기물이 부서졌다. 황씨는 공장 점거에 동참했지만 폭행이나 물건을 부수는 데는 가담하지 않았다. 하지만 14일의 점거가 끝난 뒤, 파업에 참가했던 95명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황씨처럼 가담 정도가 낮은 조합원 64명은 실형은 면했지만 ‘공동정범’으로 묶여 집행유예를 받았다.
집행유예로 끝난 줄로만 알았던 5년 전 ‘악몽’이 안내문 한 장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황씨는 “파업에 참가한 것만으로 흉악범 취급을 하며, ‘너 앞으로 조심해’라는 낙인을 찍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에 황씨 등 64명은 “가담 정도가 낮은데다 재범 위험성도 없는데 검찰이 채취를 요구한 것은 부당하다”며 ‘채취 부동의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하지만 이미 법원이 디엔에이 채취 영장을 발부한 터라, 황씨 등은 별수 없이 채취에 응할 수밖에 없게 됐다. 디엔에이 채취 요구를 받은 건 케이이시 전체 조합원 140명 중 당시 파업에 가담했던 이들 68명이다. 퇴사 인원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한 회사 노조원의 절반의 디엔에이가 국가가 관리하는 ‘범죄자 디엔에이 데이터베이스’에 평생 보관되는 셈이다.
시민사회단체 쪽에선 살인·강도·성범죄 등 흉악범죄의 재범을 막고 수사에 활용할 목적으로 디엔에이를 채취·보관하도록 법이 만들어졌지만, 검찰이 범죄의 질이나 재범 위험성에 대한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디엔에이를 채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훈민 진보네트워크센터 변호사는 “검찰이 노조원의 디엔에이 은행을 만들 목적이 아니라면 노동·집회·시위 사범에 대한 디엔에이 채취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