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엄마 안 되려고”
1000일이 흐르는 동안 중학교 2학년이던 딸은 고등학교 2학년이, 중학교 1학년이던 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이 됐다. 정방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선거 날짜도 잘 모르던 애들 엄마인 내가 이제는 정말 투쟁가가 다 된 것 같다”며 웃었다. 정 대표는 서울 아침 기온이 영하 18℃까지 내려간 24일에도 ‘학교 앞 200미터에 초대형 화상도박경마장 절대로 안됩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섰다.
성심여자 중·고등학교로부터 215m 떨어진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에 용산마권장외발매소(용산화상경마장)가 들어선다는 소식이 주민들에게 뒤늦게 알려진 지난 2013년 5월1일부터 이 지역 학부모들과 교사들은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원회’(대책위)를 꾸렸다. 이달 26일은 대책위가 꾸려진 지 1000일째를 맞는 날이다. 1000일이 지났지만 순번을 정해 용산 화상경마장 옆 천막을 지키다가 매일 아침과 저녁 1인시위를 벌이고, 주말마다 미사를 올리는 일상은 변함 없다. 1000일을 맞아 24일 화상경마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도 주민과 교사 70여명이 자리를 지켰다. “옳은 일을 포기한 부끄러운 엄마는 될 수 없으니까요.”정방 대표가 1000일 동안 싸움을 이어 온 이유다.
용산 화상경마장은 국가의 도박산업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상징적인 공간이 되기도 했다. 이날 화상경마장에 들어가는 이들을 향해 “가족을 생각하세요.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외치던 정덕 도박피해자모임 세잎클로버 대표는 “카지노에서 수백억원을 날려 본 경험자로서 경마에 빠진 이들을 보면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다. 국가가 사행산업을 조장하는 일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용산 화상경마장을 통해 알려지고 있는 것 같아 우리도 힘을 다해 돕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용산 화상경마장은 개장했다. 2014년 6월 임시개장하며 3개층을 연 데 이어 2015년 5월 본격 개장해 5개층에서 화상경마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경마장 출입은 안된다’는 학부모들 반발 속에 최근 키즈카페 입점도 준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불거진 찬성주민 여론조작, 허가받지 않은 경품 제공 등의 문제에 대해서 감사원의 공익감사가 진행 중이다.
“엄마가 어제 농성장에 있다가 감기에 걸리셨네요. 엄마가 덜 고생하게 빨리 화상경마장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성심여고에 다니고 있는 문도희(18)양은 어머니 박민숙(45)씨가 용산 화상경마장 반대 농성을 벌이는 것이 안타깝다. 1000일 전 성심여중 학생이었던 문양은 어느덧 고등학교 3학년이 됐다. 문양의 동생은 내년 성심여중 입학을 앞두고 있다. 박씨는 “가끔 딸이 문화제 같은 곳에 함께 나가서 화상경마장 이야기를 하다가 북받쳐 우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이 학교를 참 좋아한다. 그런 학교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그냥 엄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