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등 정·관계 유력 인사들의 채용 청탁 의혹이 제기된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이 2014년 감사원 감사 직전 면접 관련 자료를 상당 부분 수정한 사실이 드러났다.
25일 <한겨레>가 입수한 ‘감사원 특별조사국 조사경과 보고’ 문서를 보면, 감사원은 2014년 10월27일 오후 6시께 중진공에 ‘다음날 실지 감사를 벌이겠다’는 내용을 통보했다. 통보를 받은 지 2시간 만인 오후 8시께, 중진공 직원들은 2012~2013년 사이 이뤄진 공채 면접 평가표를 점검하면서 면접 평가위원이 연필로 작성한 부분을 모두 지우고 새로운 점수를 써 넣거나 평가표를 아예 새로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진공이 만든 이 문건에는 중진공 직원들이 2014년 10~11월 진행된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받은 조사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중진공 직원들은 이와 관련해 감사원 조사에서 ‘연필로 써서 지저분한 부분이 있고, 면접 점수를 안 적고 등수만 적어 넣은 경우도 있어서 합격자가 바뀌지 않는 수준에서 임의로 점수를 작성해 넣었다’는 취지의 해명을 했다. 그러나 감사 직전 주요 감사 대상인 면접 평가표를 수정했다는 점에서, 부정 채용의 흔적을 숨기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다. 중진공의 이런 자료 수정 탓에 서류 전형이 아닌 면접 단계의 채용 비리 의혹에 대해선 감사원과 검찰의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감사원과 검찰에서 드러난 4건의 채용 비리는 모두 서류 전형 단계에서 이뤄졌다.
문서의 용도를 두고도 의혹이 제기된다. 중진공이 감사 과정에서 직원들의 ‘말 맞추기’나 입단속을 위해 작성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34쪽 분량의 이 문서는 박철규 전 중진공 이사장이 감사원 조사를 받기 하루 전인 2014년 11월18일 작성됐다. 중진공 운영지원실이 직원들의 감사원 조사 내용을 취합한 뒤 박 전 이사장이 조사를 받기 직전 이를 한데 모아 정리했다.
실제로 보고 문서를 보면, 중진공 직원들은 명확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누가 청탁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순 합격 여부 확인만 있었다’는 취지의 답변을 반복했다. 특히 2014년 10월31일 조사를 받은 중진공 직원 신아무개씨는 감사관이 1시간30분의 시간을 주고 “채용과 관련하여 생각나는 대로 작성해서 내라”고 한 데 대해 “일상적인 내용을 5줄 정도 적어 주었음”이라고 보고했다. 또 같은 날 조사에서 “(감사관이) 질문을 하였는데 답변을 제대로 하지 않고 횡설수설하면서 시간을 끌었음”이라고 보고하기도 했다.
뒤늦게 이 문서를 발견한 감사원은 “청탁 경위를 숨기려고 작성한 것이냐”며 중진공 직원들을 추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중진공 관계자는 “다른 기관도 감사를 받으면 수검일지를 쓴다. 일반적인 차원에서 작성된 것이지 말 맞추기 등의 목적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중진공은 박 전 이사장이 퇴임한 뒤에도 ‘직원 입단속’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임인 임채운 현 중진공 이사장은 지난해 10월 채용 비리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중진공 직원 ㄱ씨를 만나 “최경환을 보호해야 된다. 최가 힘이 있어야 우릴 지켜주고 최 부총리가 살아야 너도 (산다)”라고 말한 사실이 최근 드러나 논란을 빚기도 했다. 또 임 이사장은 지난 4일 신년사에서 “(채용 관련 문제에서) 최소한의 책임도 인정하지 않고 모든 허물을 동료에게 전가시키며 조직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모습을 보고 실망이 컸다”고 말했다. 중진공의 채용 비리를 바로잡기보다 자신의 회유 정황이 공개된 것을 더 문제삼은 것으로 해석된다.
정환봉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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