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개를 공격하는 이웃집 맹견을 전기톱으로 죽인 50대 남성에게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2심은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였더라도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동물보호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었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28일 동물보호법 위반 및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김아무개(53)씨에게 재물손괴죄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형의 선고를 유예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웃집 맹견인 로트와일러가 자신의 진돗개를 공격했다고 하더라도 전기톱으로 로트와일러의 등 부위를 내려쳐 죽게 한 것은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이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동물보호법 제8조는 동물학대 등을 금지하면서 목을 매다는 등 잔인하게 죽이거나, 노상 등 공개된 장소에서 죽이는 행위, 고의로 사료나 물을 주지 않는 행위로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1·2심은 모두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묶여 있는 자신의 개를 공격하는 이웃집 개를 쫓기 위해 전기톱으로 위협하다가 범행에 이르렀고 이는 ‘긴급피난’ 행위로 볼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형법 제22조는 위급하고 곤란한 상황을 피하려는 행위가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2심 재판부는 재물손괴죄를 유죄로 인정한 반면, 동물보호법은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로트와일러가 김씨의 진돗개를 공격해 이를 쫓기 위해 전기톱으로 위협한 상황인 만큼 로트와일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상황을 피할 수 있는데도 전기톱으로 피해견을 죽인 것은 타인의 재물을 손괴한 행위에 해당한다”며 벌금 3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는 죄가 경미한 피고인에게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기간을 넘기면 없던 일로 하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은 동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려는 동물보호법 입법 취지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는 사회에 만연해 있는 동물에 대한 생명 경시 풍조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로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씨는 2013년 3월 오전 7시30분 경기도 안성시의 집에서 이웃집 맹견 ‘로트와일러’ 2마리가 자신이 기르는 개를 공격한다는 이유로 나무를 자르는 데 사용하는 전기톱을 휘둘러 이 중 한 마리의 개를 죽인 혐의로 기소됐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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