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이 도주한 지 16년 만에 23일 새벽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돼 취재진 질문에 대답한 뒤 구치소로 이동하기 위해 입국장을 떠나고 있다. 패터슨은 1997년 4월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모(당시 22세)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인천공항/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법원 “이유없이 살해…범죄 끔찍하고 죄질 나쁘다”
공범인 애드워드 리, 일사부재리 원칙으로 처벌면해
공범인 애드워드 리, 일사부재리 원칙으로 처벌면해
‘이태원 햄버거가게 살인사건’의 진범이 19년 만에 밝혀졌다. 애초 이 사건의 목격자로 지목됐던 아서 패터슨(37)이 사건의 범인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심규홍)는 29일 패터슨에게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생면부지 피해자를 별다른 이유없이 살해했다. 이 사건 범행은 피해자를 9차례 찔러 피해자를 즉시 숨지게 해 범죄가 끔찍하고, 죄질이 나쁘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범행 당시 패터슨이 18살 미만이어서 특정강력범죄처벌법에 따라 법정형 상한인 징역 20년이 적용됐다.
법원은 사건 당시 리와 패터슨 모두 범행이 일어날 것을 알고 화장실로 갔지만,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1명이라고 판단했다. 화장실이 비좁고 순식간에 범행이 일어나 흉기를 주고받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피가 많이 묻은 사람이 범인일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리는 범행 직후 곧바로 손을 씻지 않고, 상의에 많지 않은 양의 피가 뿌린 듯이 묻어있었던 반면 패터슨은 온 몸에 피가 많이 묻어 있었고, 화장실에 나온 직후에 햄버거가게 4층에 있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었던 점을 고려하면, (패터슨이 범인이라는) 리의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밝혔다. 리는 패터슨과 함께 조씨를 숨지게 한 사실이 인정됐지만, 같은 범죄에 대해 두 번 처벌하지 않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처벌은 면했다.
▶카드뉴스:이태원 살인사건
■ 19년 전 ‘이태원 살인사건’
한 가족을 불행으로 몰아넣은 이 사건은 19년 전인 1987년 4월3일 밤 10시로 거슬러간다. 당시 피해자 조중필(당시 22살)씨는 여자 친구와 함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 햄버거 가게를 찾았다가 잠시 소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에 갔다. 당시 18살 동갑내기였던 애드워드 리(37)와 패터슨은 조씨가 화장실에 가는 것을 보고 뒤따라갔다. 이태원 클럽에 다녀온 이들은 당시 칼을 갖고 갖고 있었고, 이 중 한 명이 “따라 오라. 내가 무엇인가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조씨는 목 등을 흉기로 9차례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폭 1.45m, 길이 2.6m 가량의 좁은 화장실에 있던 사람은 조씨를 포함해 단 3명뿐이었다. 이 때문에 조씨를 숨지게 한 사람은 리와 패터슨 둘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 상대방이 조씨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애초 미육군범죄수사대(CID)는 패터슨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수사대는 패터슨이 사건 직후 머리와 양손, 상하의 옷 등이 모두 피범벅이고, 범행 현장에서 칼을 들고 나온 패터슨이 그 칼을 하수구에 버린 점 등을 들어 그가 범인이라고 봤다. 범행에 사용된 칼의 주인도 패터슨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리’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부검의 의견과 거짓말탐기지 결과 등이 그 근거였다. 당시 조씨의 사체부검을 담당했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이윤성 부교수는 “범인은 키가 176㎝인 피해자보다 키가 컸을 가능성이 크고, 범인이 피해자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매우 센 사람이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리는 키가 180㎝에 몸무게가 105㎏였고, 패터슨은 키 172㎝에 몸무게 63㎏이었다. 특히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패터슨은 진실 반응을 보였고, 리는 거짓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결정적 이유가 됐다.
법원도 이를 바탕으로 범행 당시 정황과 일행들의 진술을 종합해 리가 범인이라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1997년 10월 살인 혐의로 기소된 에드워드 리에게 무기징역을, 증거인멸 등으로 기소된 패터슨에게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 했다. 1998년 1월 열린 항소심 재판부는 에드워드 리에게 징역 20년, 패터슨에게 장기 1년6개월·단기 1년의 징역을 선고했다.
■ ‘리’는 왜 무죄를 받았나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같은 해 4월 원심을 깨고 이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며, 패터슨이 진범일 가능성을 내비쳤다. 리는 범행 직후부터 자신의 범행을 적극 부인하고 범행 자체를 숨기려 하지 않았던 반면 패터슨은 자책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며, 범행에 사용된 칼이나 피 묻은 옷 등의 증거물을 인멸하거나 은닉하려고 한 점에서 패터슨의 진술이 크게 의심된다고 판단했다. 목격자가 없는 상황에서 이들의 진술 신빙성과 현장 정황, 범행 직후 정황 등은 진범을 가리는 주요 근거가 됐다.
당시 햄버거가게 화장실 세면대에 묻은 많은 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도 중요했다. 패터슨은 당시 리가 조씨를 찌르는 범행 장면을 세면대 오른쪽 모서리와 바로 옆 벽을 기대고 서서 지켜보다가 조씨가 자신을 붙잡으려고 해 밀치고 나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9차례나 흉기에 찔려 짧은 시간 안에 숨진 조씨가 패터슨을 한 차례 밀쳤다가 다시 세면대에 많은 양의 피를 흘리고 구석 쪽으로 쓰러졌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봤다.
또 대법원은 패터슨이 당시 범행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것도 이례적이라고 판단했다. 리는 패터슨의 범행 당시 가격 횟수와 가격 부위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못했지만, 패터슨은 범행 당시 리가 칼을 어떻게 잡고 있었는지, 피해자의 어느 부위를 몇 번씩 가격했는지 비교적 자세히 진술했다. 대법원은 “이는 예상 밖의 범행을 갑자기 목격한 사람으로서 다소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리의 무죄는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에서 1998년 9월 확정됐다. 당시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이균용 부장판사는 지난해 9월 <한겨레>와 만나 “패터슨은 당시 상황에 대해 찌른 횟수와 부위를 정확하게 진술하고, 리는 수회 찌르는 것 같더라고 자세히 기억하지 못 했다”며 “외국에서 자주 언급하는 개념 중 ‘비밀의 폭로’라는 게 있는데 이는 피고인의 자백을 믿으려면 범인만 아는 사실이 있는지 살펴보고 그 진술의 신빙성을 따진다”고 했다. 이 판사는 “당시 패터슨이 범행 직후 칼을 갖고 나오고, 그때 입었던 옷을 불태웠던 점 등 을 모두 고려해 보면, 리의 진술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리의 무죄가 확정된 뒤 조씨의 가족들은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결정적 실수를 했다. 1999년 패터슨 사건 담당 검사가 출국금지 연장을 하지 않은 틈을 타 패터슨은 미국으로 출국했다. 애초 패터슨의 출국금지 기간은 1999년 8월23일까지였고, 검찰은 그해 8월26일 출국금지 연장조치를 했다. 패터슨은 그 사이인 8월24일 미국으로 떠났다.
■ 18년 만에 다시 재판
‘미제’로 남을 뻔 한 이 사건은 2009년 9월9일 이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하면서 다시 관심을 모은다. 국민적 공분이 커지고, 국정감사에서까지 다뤄지졌다. 그러자 검찰은 영화 개봉 사흘 뒤 미국 법무부와 공조해 패터슨의 소재를 확인하고, 미국에 범죄인 인도요청을 했다.
검찰은 재수사를 통해 2011년 12월 패터슨을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재수사에서 △‘혈흔 형태 분석’을 통해 패터슨은 피범벅이었고, 리는 옷에 피가 조금 묻었는데 범행 수법상 피해자와 범인의 신체 접촉이 불가피해 범인은 반드시 피를 많이 뒤집어쓸 수밖에 없는 점 △당시 세면대에 많은 피가 묻어 있었는데, 세면대 오른쪽 모서리와 바로 옆 벽을 기대고 서서 범행을 지켜봤다는 패터슨의 진술대로라면 세면대와 벽에 그렇게 많은 피가 묻을 수가 없는 점 △당시 조씨가 배낭을 메고 있어 키가 작은 사람도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점 등을 새롭게 밝혀냈다.
결국 패터슨은 국내로 압송돼 18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서게 됐다. 지난해 9월23일 오전 4시26분 패터슨은 미국 로스앤젤레스발 대한항공편을 통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하얀색 반팔 차림에 머리카락은 더 자랐지만, 그의 태도는 변한 게 없었다. 패터슨은 “내가 여기(한국에)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4일 ‘이태원 햄버거 살인사건’의 진범을 가리기 위한 정식재판이 열렸다. 첫 공판에는 애초 범인으로 기소됐다가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난 리가 ‘목격자’ 신분으로 18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섰다. 한때 친구였던 이들이 운명이 바뀌어 다시 만났지만, 이들은 여전히 서로가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직접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당시 목격자들의 소재지를 찾을 수 없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증인으로 출석한 당시 부검의 이윤성 서울대 의대 교수, 미군범죄수사대 수사관, 도검전문가 등의 진술은 패터슨이 범인이라는데 무게를 실어줬다. 이 교수는 “피가 더 많이 묻어 있는 쪽이 피해자와 더 가까웠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고, 미국범죄수사대 수사관은 “초동수사 당시 15명의 주변인들은 패터슨이 버거킹 안에서 사람을 찔렀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또 법원은 지난해 12월 이태원의 햄버거 가게 화장실을 그대로 재연한 세트장에서 18년 만에 현장검증을 벌이기도 했다.
■ 조씨 어머니 “이런 법이 있나 기가 막혔다”
지난해 11월 열린 11차 공판에서 피해자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74)씨의 절절한 멘트가 법정에 울렸다. “사람을 놀이 삼아 죽이고 서로 죄 안 받으려고 미루는데 우리나라 사법부는 한 사람은 1년4개월, 한 사람은 1년6개월 만에 풀어줬습니다. 우리나라 법이 이런 겁니까? 18년 전에 잘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검사님만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이 되더니 1998년에는 결국 한 명이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우리는 이런 법이 있나 기가 막혔습니다.” 피해자 조씨의 어머니는 4개월여 동안 진행된 재판에 계속 참석했다. 당시 조씨 사망 당시 사진들이 나올 때면 힘겨운 듯 법정 밖에 나와 있기도 했다. 이씨는 “재판을 보는 내 가슴이 미어지고 사지가 떨린다. 이번에는 재판이 잘 될 것이라 믿는다. 범인을 밝혀 엄한 벌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결국 이 살인사건은 가족들에게는 큰 상처를 남긴 채 19년 만에 진실이 드러났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 사건 1차 수사·재수사로 구성한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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