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재단 첫 장학금 수여
전태일재단, 10명에 첫 장학금 전달
이주민 노동자·청우회 자녀 등 혜택
차비 아껴 이웃에게 풀빵 사주었던
전태일 열사의 뜻 오늘에 이어나가
단속 피하려다 다쳐 생계 막막한
방글라데시 불법이주 노동자 눈길
“구원 찾았다…한국어 공부하고파”
전태일재단, 10명에 첫 장학금 전달
이주민 노동자·청우회 자녀 등 혜택
차비 아껴 이웃에게 풀빵 사주었던
전태일 열사의 뜻 오늘에 이어나가
단속 피하려다 다쳐 생계 막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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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찾았다…한국어 공부하고파”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인 ㄱ(38)씨는 2013년 말 쫓아오는 출입국관리소 단속원을 피해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두 다리가 부러졌다. 2년 넘게 치료를 이어왔지만 아직도 목발 없이는 2미터도 걷지 못한다. 무리한 단속에 대해 출입국사무소 쪽은 당시 “테러리스트 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지만 ㄱ씨의 혐의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잘못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지만 나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힘들어했다.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 ㄱ씨와 같은 공장에서 일했던 섹알마문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이 ㄱ씨의 심경을 대신 전했다. 재활치료를 받고 있지만 ㄱ씨의 두 다리가 제 기능을 회복할지는 불투명하다.
‘나쁜 기억’ 만을 안겨줄 뻔한 한국 생활에서 ㄱ씨는 얼마 전 “구원을 찾았다”며 웃었다. 전태일재단에서 시작한 장학사업의 도움을 받는 첫 번째 장학 수혜자 10명 가운데 1명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장학금 200만원으로 한국어를 배울 계획이다. ㄱ씨를 전태일 장학사업에 추천한 섹알마문 수석부위원장은 “본국에 있는 동생 4명과 부모님 생계를 책임진데다 부상 뒤로는 일도 하지 못해 모아둔 돈이 없다. 다리를 다쳐 본국에 돌아가도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서 한국어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장학금으로 한국어 교육을 받고 싶어한다”고 했다.
16일 전태일재단은 서울 종로구 전태일재단 사무실에서 전태일 장학사업 장학증서 수여식을 열고 첫번째 수혜자 10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주노동자 ㄱ씨와 사회활동가의 자녀, 과거 청계피복노조에서 활동했던 청우회 회원들의 자녀들이 장학금을 받았다. 자녀 대학 등록금을 지원받은 청우회 회원 이정기(47)씨는 “나는 맏이로 태어나 가족 생계를 위해 고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봉제일을 하러 왔지만 아이만큼은 배움의 기회를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 아이의 대학 합격 소식에 기쁘면서도, 봉제일감이 줄어들어 오백만원 가까운 등록금 걱정이 컸는데 장학금을 받게 돼 다행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태일 정신을 기리자’는 취지로 시작한 전태일 장학사업은 나이나 소속에 관계없이 ‘배움이 고픈’ 모든 사람을 대상자로 삼는다. 장학금은 앞으로 대안학교 학생, 늦깎이 학생 등 다양한 이들로 대상자를 넓혀갈 계획이다.
적금으로 모은 1억원을 내놓고 장학사업 물꼬를 튼 최종인 청우회 회장(<한겨레> 2월12일치 29면)은 “전태일은 늘 배움을 갈망해왔고, 한편으로는 차비를 아껴 다른 노동자들의 풀빵을 사주던 사람이었다. 세월이 흘러서 우리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그 뜻을 이어가려고 한다”고 장학금의 의미를 설명했다. 장학금은 전태일의 친구들이 이 시대의 소외된 이들에게 전하는 ‘풀빵’인 셈이다. 이날 ㄱ씨는 미등록 체류자인 신분을 드러내기 어려워 수여식에 참석하진 못했다. 그 대신 전태일 열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섹알마문 수석부위원장을 통해 소감을 전했다. “한국에서 정말 힘든 일을 많이 겪었지만,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에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의 한 노동자의 뜻을 기려 도움받은 기억을 잊지 않고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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