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 진료기록 제출할 의무 없고
현행법 ‘동물은 물건’ 배상액 적어
소송부담 쉽잖아…피해구제 3%뿐
현행법 ‘동물은 물건’ 배상액 적어
소송부담 쉽잖아…피해구제 3%뿐
#1 서울 중랑구에 사는 ㄱ씨는 지난해 말 11살짜리 반려견 까꿍이를 잃었다. 의자에서 뛰어내리다 다리가 부러진 까꿍이는 ㄴ동물병원에서 다리에 철심을 박는 대수술을 했다. 숨지기 전날 밤, 가쁜 숨을 내쉬는 등 까꿍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병원에 전화했지만 ‘지금 당장 병원에 안 와도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병원만 제때 갔어도 살릴 수 있었을 거란 생각에 두 차례 병원을 찾아가 항의했더니 병원 쪽에선 도리어 ㄱ씨를 업무방해로 고소하겠다며 경찰을 불렀다.
#2 지난해 가을 길고양이 한 마리를 집에 데리고 온 ㄷ씨는 서울 동작구의 한 병원에서 20만원을 들여 기생충 검사를 했다. 병원 검사에서 ‘이상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고양이는 며칠 지나지 않아 입으로 기생충을 토해내며 이상 증상을 보였다. 원래 키우던 고양이에게도 기생충이 옮아 추가로 병원비가 들었다. 병원은 의료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배상은 해주지 않았다. ㄷ씨는 “어디에 민원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버린 돈으로 생각하고 단념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이 동물병원의 잘못된 의료행위나 의료사고로 속을 태우고 있다. 의료사고를 입증해 법적 책임을 묻거나 손해배상을 받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18일 한국소비자원의 통계를 보면, ‘1372상담센터’를 통해 접수된 동물병원 관련 상담 건수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매해 300건을 넘어가지만 피해 구제가 접수되는 경우는 매해 10건 미만이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피해 구제가 접수돼 병원 쪽에 조정을 권고해도 (이를 이행하는 것이) 강제 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의료사고가 의심될 때 반려동물 보호자들은 병원의 진료기록을 가장 먼저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행 수의사법에는 의료행위가 기록된 ‘의무기록’을 제출할 의무가 없다. 법적 소송을 하지 않는 한, 수의사들은 이를 근거로 보호자에게 의무기록 공개를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정 다툼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통상 의료사고에서는 피해자의 진술이 가장 중요한데 말 못하는 동물의 의료 과실을 입증하는 건 ‘사람’의 경우보다 더 힘들다. 현행법(민법 98조)의 해석상 동물은 유체물(공간을 차지하는 존재), 즉 ‘물건’에 해당된다. <동물법 이야기>의 저자 김동훈 변호사는 “법률 해석상 동물은 물건이기 때문에 사람의 의료사고처럼 업무상 과실치상 또는 과실치사죄가 성립되지 않아 민사소송을 해야 한다”며 “배상액도 매우 적기 때문에 소송을 한다 해도 변호사 선임 비용이 더 많이 들게 된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 케어 박소연 공동대표는 “의료사고를 입증하는 게 어려우니 동물병원들은 법적 책임과 배상에 대해 나몰라라 하는 곳이 많다”며 “사람처럼 동물 의료분쟁을 조정하는 제도를 만들고 동물병원의 입증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동물병원 관련 소비자 상담 및 피해구제 요청 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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