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해 5월 서울 종로구 신문로 시교육청에서 자사고 학부모들과 간담회를 갖고 의견을 듣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시교육청의 고교 체제 개편 관련 연구 용역을 수행한 연구팀이 특목고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탓에 고교 평준화 제도가 무의미해져 학교 간 격차가 심화하고 있다며, 일반고와 특목고, 자사고를 통폐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교 서열화를 해소하기 위해 외고와 자사고를 폐지하자는 주장이다.
24일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연구팀이 서울시교육청 산하 서울교육연구정보원의 용역을 받아 작성한 ‘초·중등교육 정상화를 위한 고교 체제 개편 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연구팀은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로 이어지는 수직적 서열체계가 강고하게 구축되면서 평준화 제도가 실질적으로 형해화했으며, 이로 인해 계층 간 분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특목고(외고, 국제고)와 자사고를 일반고에 통폐합시켜 일반고를 중심으로 고교 체제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교육 격차 등을 주로 연구해온 학자로, 한국교육사회학회 회장을 지낸 바 있다.
연구팀은 고교 서열화 체제가 일반고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특히 서울의 경우, 자사고 지정이 대거 이뤄진 2010년을 기점으로 평준화 제도가 거의 와해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특목고·자사고는 상반기에 학생을 모집(전기 모집)하고 일반고는 하반기에 모집(후기 모집)하는 현행 ‘전·후기 고교 입학 전형’을 격차 확대의 주요한 원인으로 짚었다. 연구팀은 “전체 고교 정원 13%를 차지할 정도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특목고·자사고가 일반고에 앞서 학생을 선발함으로써 우수 학생을 선점하는 특권을 누리는 반면 중학교 성적 중하위권 이하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일반고의 경우 학생들 대다수가 무력감과 열패감에 젖어 있어 정상적인 학습지도와 생활지도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로 이어지는 수직적 서열체계가 확립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했다. 연구팀이 보고서에 인용한 이전 연구 결과를 보면, 2010학년도부터 2014학년도까지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자사고 및 특목고가 대체로 23~29% 정도의 성적 우수자를 확보하고 있는 반면 일반고는 그 비율이 8.4~9.2%에 그쳤다.
연구팀은 또 서울 고교의 학교 격차가 매우 심각한 상태로 “교육 불평등이 극심한 미국에서나 목도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 일반고, 자사고, 특목고 학생들의 성적을 분석한 결과, 학업성취의 42.6%가 학교 특성에 의해 설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한국의 중등교육은 평준화 제도의 강력한 영향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에 학업성취가 학교 특성에 의해 좌우되는 정도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며 “서울시의 경우 자사고 대거 지정에 따라 특목고-자사고-일반고로 이어지는 서열체계가 강고하게 구축된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일반고와 특목고·자사고의 모집 시기가 전·후기로 구분돼 있는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장기적으로는 현재의 전·후기 선발 방식을 탈피해, 1단계에서는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포함) 학생을 선발한 뒤, 2단계에서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가 동시에 선발하고, 3단계에서는 각 단계에서 부족했던 인원을 충원하는 방식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장기적으로는 특목고와 자사고를 일반고에 통폐합해 일반고 중심으로 고교체제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엄밀한 의미에서 진학교육을 중점으로 하는 학교라는 측면에서 특목고, 자사고는 일반고와 차별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중산층의 교육열에 부응하기 위해 이런저런 유형의 수월성 추구 학교가 도입되었는데 수월성 개념의 재규정이 불가피한 실정에서 이제 그것의 시대 적합성과 효용성을 냉철하게 재검토할 시점”이라며 “입시 위주 교육보다는 자신의 관심 분야를 학습할 수 있으며, 특정 교과에 치중하지 않고 다양한 교과를 배울 수 있는 일반고가 창의력 신장에도 강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고가 보다 시대적 적합성을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현행 고교 체제는 일반고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함은 물론 계층 간 교육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구조적 조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이는 궁극적으로 부와 신분의 세습이 일상화되는 사회를 초래하는 데 일조를 하게 될 것”이라며, 고교 체제 개편이 불평등 해소 및 사회 통합을 위해서라도 긴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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