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혜인(25·가운데)씨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반대 시민 필리버스터’에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용씨는 경찰 수사과정에서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압수당한 뒤, 법원에 소송을 내 압수수색 취소 결정을 받아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내가 정말 테러범 같은 잘못을 한 것일까요? 왜 내 사생활과 친구들의 정보가 모두 수사기관에 넘어가고, 그 일 때문에 내가 모욕감과 미안함을 느껴야 했을까요?”
법원의 ‘카카오톡 압수수색 취소’ 결정을 이끌어낸 용혜인(25)씨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반대 시민 필리버스터’(시민 필리버스터)에 발언자로 나섰다. 전날 서울중앙지법은 용씨가 서울중앙지검 검사와 서울 은평경찰서 경찰관을 상대로 자신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압수수색을 취소해달라며 낸 준항고 사건에서 용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적으로 검찰과 경찰의 카카오톡 압수수색의 부당성을 인정받은 용씨가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시민 필리버스터 현장을 찾은 것이다.
발언대에 선 용씨는 “그나마 나는 영장 집행의 부당함을 지적할 수 있었고 법원이 그것을 불법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이 통과돼 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영장도 없이 국정원의 사찰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경찰과 검찰은 세월호 추모 집회에 참여한 용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2014년 5월20일부터 21일까지 용씨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휴대전화 번호를 포함한 대화 상대방의 정보, 사진, 동영상 전체를 압수수색한 뒤 증거자료로도 사용하지 않았다. 법원은 “해당 압수수색은 당사자의 참여권을 보장하도록 한 형사소송법에 위배되는데다, 압수수색으로 확보된 자료가 용씨의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용씨는 카카오톡 압수수색 사실을 알게 된 뒤 자신이 한 말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봤다고 한다. “사실 특별한 내용은 없었어요. 동생과 남자친구에게 보낸 일상적인 메시지들, 수업 조모임을 같이 한 친구들과 나눈 얘기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나 때문에 정보가 넘어간 동생과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일상이 이렇게 쉽게 침해당할 수 있구나 싶어 참담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날 시민 필리버스터에는 2014년 10월 검찰과 경찰의 카카오톡 계정 압수수색을 폭로해 ‘사이버 망명’ 바람을 일으켰던 정진우 노동당 기획실장도 참여했다. 그 역시 2014년 6월 세월호 집회에 참여했다가 카카오톡 계정을 압수수색당했다. 정 실장에 대한 카카오톡 압수수색 내용 역시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받지 못했다. 정 실장은 발언대에서 “사이버 사찰에 날개를 달아주는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그나마 법에 기대 개인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주장했던 우리의 노력조차 무의미해질까봐 무력감을 느꼈다”며 “테러방지법을 막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도 이제 저한테는 카카오톡이 아닌 텔레그램으로만 말을 건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날 오후까지 용씨와 정 실장을 비롯해 시민 90여명이 시민 필리버스터에 나서 테러방지법 반대 발언을 이어갔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등으로 구성된 ‘테러방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2일부터 이날 오전 10시까지 모인 ‘테러방지법 폐기 촉구 시민서명’ 28만3000여건을 1차로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전달했다. 서명은 28일까지 이어진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2014년 10월 검찰과 경찰의 카카오톡 계정 압수수색을 폭로했던 정진우 노동당 기획실장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반대 시민 필리버스터’에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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