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전 말기 폐암을 앓고 있는 오덕진(83) 할머니가 대전시 동구 토천길에 있는 집 안의 의료용 침대에 누워 있다. 서너평 남짓한 방은 링거걸이, 이동식 변기, 목욕의자 등 환자용품들로 가득했다. 그는 2013년 처음 폐암 진단을 받은 뒤 종합병원, 요양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생애 마지막은 아들 내외와 함께 살았던 이 집에서 준비하고 있다.
오전 10시께, 그가 갑자기 여러 차례 눈을 끔벅거리며 수인사를 건넨다. 충남대병원 김삼용 교수(혈액종양내과 전문의)와 김은숙 간호사가 방문을 여는 걸 보고 반가움을 표시한 것이다. 두 사람은 충남대병원이 운영하는 가정호스피스팀의 의료진이다. 오 할머니가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매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오 할머니는 10년 전부터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보청기를 써봤지만 신통치 않았다. 의료진이 글씨판에 질문을 써주면, 오 할머니가 대답하는 식으로 소통을 한다. 글씨판을 집어든 김 간호사의 손놀림이 점차 바빠졌다.
“할머님, 불편한 곳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괜찮아. 좀 좋아졌어.”
오 할머니 옆을 지키던 며느리 송행순(55)씨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구토가 심하고 호흡도 안 좋으셨는데 고비를 넘기신 것 같다”고 거든다. 청진기를 꺼내 진찰을 시작한 김 교수는 혈압과 맥박, 체온 등을 측정하고 아침식사로 뭘 드셨는지부터 세심하게 할머니의 상태를 챙겼다. 그는 “환자가 일상생활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최대한 편안한 상태를 만들어주는 데 주력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말기 암환자들은 암세포가 뼈와 신경 등을 침범하거나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통증을 달고 산다. 호흡곤란이나 기침·가래, 구토, 변비 등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호스피스팀의 가장 큰 역할은 처치와 약물처방으로 이런 통증을 줄여주는 일이다.
오 할머니와 같은 말기 암환자가 집에서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가정 호스피스’ 시범사업이 새달 2일부터 시작된다. 그동안은 충남대병원 등 일부 병원이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이나 종교단체 기부금 등으로 제공해왔을 뿐, 법적 근거나 건강보험 수가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 앞으로는 한달 5만원 수준의 비용으로 전국 17개 의료기관을 통해 가정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현행 암관리법은 ‘말기 암환자’를 ‘적극적 치료를 해도 회복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돼 몇개월 안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들’로 정의한다. 이런 말기 암환자가 병원을 다니지 않고 집에서만 지내도 괜찮은 걸까?
오 할머니는 “병원에서 지내는 대신 집에서 요양을 하는 게 훨씬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했다. 2년여 전 암진단을 받은 오 할머니는 “수술이 어렵다”는 병원 쪽의 통보를 받은 이후 항암치료에 매달렸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약물 부작용과 후유증에 시달리다 여러차례 응급실에 실려가야 할 정도로 고통이 컸다. 송씨는 “연세가 있으신데 약이 너무 독하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차라리 집에서 계피나 생강을 넣어서 차를 끓여드리며 안정을 취하는 게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되는 걸 보면서 항암치료를 중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통적 개념의 치료와 호스피스(완화의료)의 가장 큰 차이가 여기서 갈라진다. 전자가 어떤 여건에서라도 수명을 연장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각종 치료를 계속 시도하는 반면, 호스피스는 일정 단계가 넘어서면 현대 의학의 치료가 무의미해진다고 보고 통증 조절 등을 통해 환자를 돌보는 데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오 할머니는 이미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작성했다. 임종 과정에서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항암제 투여 등으로 치료효과는 없이 기간만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담았다. 연명의료 중단은 지난달 8일 국회에서 일명 ‘웰다잉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통과됨에 따라, 2018년부터 시행된다. 현재도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에서 연명의료를 중단한 연세대 의료원 의료진이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 병원에서 관행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지난 24일 말기 폐암을 앓고 있는 오덕진 할머니가 대전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충남대병원 호스피스팀으로부터 가정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고 있다. 의료진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오 할머니와 글씨판을 통해 소통한다. 대전/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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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이 와 통증 줄여줘…할머니 “집에 오니 마음이 편안해”
항암치료 중단 이후 오 할머니의 가장 큰 고민은 어디에 머무를 것인지였다. 당시에는 오 할머니도 가족들도 완화의료를 받을 수 있는 호스피스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다. 그는 결국 요양병원에 두달여를 머무르게 됐다. 대상포진 치료를 겸해 입원하게 됐는데, 의식이 또렷한 오 할머니에게 요양병원은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송씨는 “노인들이 넘어지면 치료가 어렵다며, 걸어다닐 수 있는 노인들도 침대에서 못 내려오게 하더라.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게 하니까 정신적으로 힘들어하셨다. 어머님이 이곳에서 받은 충격으로 ‘섬망’(과다행동과 환각, 떨림 등이 나타나는 신경정신질환) 증상까지 보이셨다”고 전했다.
며느리 송씨가 이곳저곳을 수소문하다가 지난해 10월에야 충남대병원 호스피스팀과 연락이 닿았다. 오 할머니는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는 대신 가정 호스피스를 받는 쪽을 선택했다. 충남대병원 가정 호스피스는 지방자치단체 지원 덕에 현재는 무상으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모든 이들이 가정 호스피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 할머니의 경우, 며느리가 간병을 맡아준데다 집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가정 호스피스를 시행하는 병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족 중에 간병을 맡아줄 이들이 없는 경우엔 간병비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가족이 간병을 맡는 경우에도, 만만치 않은 간병노동 탓에 가족간 갈등이 생길 수 있다. 다행히 송씨는 가정 호스피스에 만족하고 있다. 그는 “병원이 아닌 곳에서 어머니를 모실 수 있게 돼서 구세주를 만난 심정”이라고 말했다.
무의미한 항암치료 중단하고 집으로
인근에 호스피스 시행 병원 알게돼
의료진이 찾아와 통증조절·말동무
1시간반 진료·상담 받은 할머니
“다음주엔 언제 올거야?”
통증 완화 외에도 호스피스팀이 오 할머니를 돌보는 데 신경을 기울이는 것은 심리적 안정이다. 김 간호사는 “귀가 잘 안 들리시다 보니 뉴스를 보기도 어려우셔서,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야기해드리는 것을 좋아하신다. 올봄에 본인이 직접 기르신 외손녀가 결혼을 한다고 하니까 며칠 새 많이 좋아지셨다.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도 목표가 생기면 삶의 의미를 다시 찾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오 할머니는 매주 미술치료도 받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이나 떠오르는 일을 그림으로 그리고 장식물로 만든다. 미술치료는 간병을 맡는 며느리와 함께 받는다. 보호자가 간병으로 심신이 지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일본에서는 호스피스팀에 정신과 전문의가 포함된다. 특히 암환자들은 우울증을 동반하기 쉽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저서 <죽음과 죽어감>에서 시한부 환자들이 죽어가는 과정에서 ‘부정과 고립→분노→협상→우울→수용’의 다섯 단계를 겪는다고 제시했다. 수용에 이르기까지 환자가 겪는 심리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보호자인 가족들부터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김 교수는 강조한다. 충남대병원의 최영심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는 “때로는 가족들은 환자에게 병명을 숨기고 환자는 혼자 추정만 하고 있어, 우리가 자세히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환자에게 자기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결정권을 주기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라고 말한다.
집에서 임종을 맞기로 한 오 할머니의 경우, ‘마지막 순간’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오 할머니와 가족들은 호스피스팀의 방문을 통해 임종에 대해서도 하나둘씩 배워가는 중이다. “임종 직전에 응급실에 가더라도 별로 좋을 게 없다”는 의료진의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혈압이 떨어지고 소변량이 줄어드는 등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나타나는 증상을 미리 알아두고, 마지막 순간에 할머니와 가족들이 나누어야 할 일들을 준비하는 것이다. 집에서 임종을 맞게 되면 보호자가 환자의 호흡정지를 확인하고, 장례식장으로 운구해 ‘사체검안서’(사망진단서와 같은 효력)를 받게 된다. 미리 교육을 받더라도, 막상 현실로 닥치면 공포스러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임종 직전에 호스피스 의료진이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기도 한다.
지난 24일 말기 폐암을 앓고 있는 오덕진 할머니가 자신의 집에서 걷기 연습, 욕창 처치 등을 하기 위해 충남대병원 가정호스피스팀 김은숙 간호사의 도움으로 침대에서 내려오고 있다. 대전/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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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성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죽음을 맞길 원하는 장소로 절반 이상인 57.2%가 가정(자택)을 택했다. 호스피스 완화 의료기관(19.55)과 병원(16.3%), 요양원(5.2%)에 견줘 훨씬 비중이 높았다.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을 가장 선호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의료기관에서 사망하는 비중은 2005년 49.8%에서 지난해 74.7%로 늘어난 데 비해 자택 사망은 35.3%에서 15.6%로 감소했다. 김 교수는 “예전에는 집에서 임종을 맞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90년대 이후 병원에서 맞는 쪽으로 바뀌어왔다. 핵가족화의 영향, 가족들의 두려움 등으로 임종 때 병원으로 오는 경우가 많은데 가정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으면 집에서 마지막 작별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시간 반여의 진료 및 상담이 끝난 뒤, 오 할머니가 의료진에게 물었다.
“다음주에는 언제 올 거야?”
“월요일에 올게요, 할머님~.”
오 할머니의 달력에는 또 하나의 동그라미가 그려졌고, 다시 기다림이 시작됐다.
가정 호스피스
호스피스는 주치의가 약물·수술 등 병원 치료가 환자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해 치료중단을 결정하면 통증완화·심리상담 등 환자에게 필요한 여러가지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남은 수명이 6개월인 것으로 판정받은 환자가 대상이다. 이런 서비스를 병원이 아닌 가정에서 받는 것이 가정 호스피스다.
황보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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