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앞줄 맨 왼쪽)가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기자실에서 대한변호사협회의 테러방지법안 의견서 사태와 관련해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변협) 회장이 테러방지법에 대해 변협 명의로 찬성 의견을 낸 것에 대해 변협 집행부까지 나서 의견서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하 회장이 유감을 표명했음에도 변호사들이 강경하게 나오는 데는 테러방지법 찬성이 인권 보호에 앞장서야 할 변호사의 직업적 양심에 어긋난데다, 하 회장의 ‘일방적 업무 스타일’에 대한 내부 반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위은진 변협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등 전·현직 인권위원 8명은 2일 기자회견을 열어 “변협은 즉각 테러방지법 의견서가 변협의 공식 입장을 반영한 것이 아님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변협의 찬성 의견서가 인권 보호라는 변호사의 직업적 양심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변협이 정치적 낙인이나 비난을 감수하고도 나서야 할 때가 있다면 인권을 위할 때일 것”이라면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일부 집행부가 내부 절차를 어겨가며 변협 명의로 성명을 낸 것은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변협의 존재 의의를 저버린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변협 집행부의 공개사과도 요구했다. 위 부위원장 등은 “의견서 제출에 관여한 변협 집행부 전원이 공개사과를 하고, 다시는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감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성명서에는 이명숙, 민경한 변호사 등 전·현직 인권이사 16명을 포함해 1000여명의 변호사가 이름을 올렸다. 앞서 김종철 인권위원장은 테러방지법 찬성 의견 제출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사퇴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처럼 변협 집행부까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은 하창우 회장의 독단적인 업무 스타일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하 회장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과 관련해 위헌소송을 제기하고, 전관예우를 막겠다며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신고를 반려하는 등 주요 현안에 대해 굵직굵직한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이런 결정들을 일부 측근들과 상의해서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집행부 인사들은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되거나 상임이사회를 통해 나중에 통지만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1일 열린 상임이사회에서는 이에 대해 공개적인 문제 제기도 나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상임이사회에서 이명숙 부협회장은 “중요한 안건을 상임이사회를 거치지 않고 몇몇 사람과 결정하고 뒤늦게 집행부에게 통고하거나 언론을 통해 알게 하는 식의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개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이 부협회장은 내년 2월까지 임기인데도 불구하고 부협회장 자리는 물론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와 여성특별위원회 등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10명의 부협회장과 16명의 상임이사로 꾸려진 변협 집행부는 협회장이 추천한 사람 중에 총회에서 선임하도록 돼 있어 주요 집행부 인사들이 대부분 회장의 ‘예스맨’ 역할에 그친다는 내부 비판도 있다.
하 회장은 이날 변협 인권위원회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의견서 제출 절차 등 관련 규정을 전부 다 손질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는 하 회장이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 등을 보고 추가적인 대응을 검토하기로 했다. 변협 관계자는 “오늘 기자회견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영지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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