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이 등장하면서 ‘불안’이 현실을 잠식해가고 있다. 테러방지법에 대한 여론조사에선 반대 의견이 찬성 의견을 역전했고, 사생활 검열을 우려하는 이들의 이른바 ‘사이버 망명’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2~3일 전국 성인 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이번에 제정된 테러방지법에 대해 ‘일반인까지 사찰할 우려가 있으므로 반대한다’고 답한 의견이 51%로 ‘테러 예방에 필요하므로 찬성한다’는 의견(39%)보다 12%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새누리당 지지층은 72%가 테러방지법에 찬성한 반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과 국민의당 지지층은 각각 85%, 60%가 반대했다. 이번 조사는 휴대전화 임의걸기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해 전화조사원 인터뷰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3.1%포인트(95% 신뢰수준), 응답률은 20%다.
앞서 지난해 11월27일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임의걸기 자동응답 방식으로 실시한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에서는 테러방지법 찬성이 64.5%로, 반대(22%) 의견의 약 3배인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사찰 공포’는 일상으로 이어졌다. 카카오톡·라인 등 국내 메신저 대신 해외에 서버를 둬 공권력의 영향력이 미치기 어려운 독일 메신저 ‘텔레그램’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2년 전 카톡 감청 논란 때에 이은 ‘2차 사이버 망명’이란 말까지 나온다. 지난 3일 카톡에서 텔레그램으로 갈아탄 직장인 김아무개(36)씨는 “나 같은 시민의 사생활은 안전하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는데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니) 이젠 뭔들 못할까 싶다”고 말했다. 라인을 지우고 텔레그램에 최근 가입한 취업준비생 심아무개(27)씨는 “나 같은 사람을 감시할 일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집회 참여자를 이슬람국가(IS)에 빗대는 대통령을 떠올리면 불안감이 안 생길 수 없다”고도 했다. 2년 전부터 텔레그램을 써온 직장인 박아무개(30)씨는 “3일 하루에만 지인들이 텔레그램에 가입했다는 알림이 10번 이상 울렸다. 주변에서 느끼는 불안감이 그때와 차원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텔레그램은 아이폰 앱스토어 무료 애플리케이션 인기차트 3위(4일 기준)에 올랐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이에 대해 “정부에 대한 사소한 불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일반 시민들의 불안감이 반영된 것”이라며 “테러방지법을 넘어 국가정보원·정부에 대한 불신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4일 보도자료를 내고 “그동안 제기된 국민들의 우려를 깊이 유념하고 테러방지법 시행 과정에서 입법 취지에 맞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반 규정과 절차를 철저히 엄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한솔 황준범 기자 sol@hani.co.kr
테러방지법 관련 찬반 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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