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개강 했지만 ‘여전히 24시간’ 평화의 소녀상 앞 지켜
소녀상 지킴이 한연지 씨 “이 공간 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
소녀상 지킴이 한연지 씨 “이 공간 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
“캠퍼스, 그리워요. 16학번(올해 신입생) 후배들을 캠퍼스에서 못 만나는 게 제일 속상하지만 그래도 제가 있으니까 후배들이 이쪽으로 찾아와 저도, 소녀상도 응원해주니 잘 된 것 같기도 하고.”
소녀상 지킴이들이 개강을 맞아 학교로 돌아갔지만, 대학생 한연지(23·사진)씨는 지금도 여전히 24시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을 지키고 있다. 한씨는 8일에도 길을 지나다 “고생한다. 텐트라도 치고 하라”며 격려해주는 어른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런데 (경찰이) 텐트는 못 치게 해요”라며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아직 매서운 3월 바람에 “여기가 특히 더 추운 것 같다”며 오리털 점퍼를 여미면서도 한씨의 표정은 당찼다.
한씨와 함께 소녀상을 지키던 다른 소녀상 지킴이들은 지난 1일 ‘소녀상 지킴이 대학생 농성 시즌2’를 시작하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일본군‘위안부’ 합의 폐기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한씨만은 소녀상 곁에 남았다. “이 공간이 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게 한씨가 ‘농성장 붙박이’를 자원한 이유다. 농성장을 지키기 위해 한 달 70여만원 받던 학교 앞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그만뒀다. 한씨는 “저한테는 소중한 생계비라서 고민하다가 이제는 단순한 농성장이 아닌 평화의 상징이 된 이 자리를 지키는 게 더 의미있겠다고 생각해서 과감히 그만뒀다”며 웃었다.
한씨는 매일 아침 7시30분께 핫팩을 채운 침낭에서 일어난다. 소녀상 옆에서 밤새 웅크렸던 몸을 푸는 ‘아침체조’는 빼놓지 않는 일과다. “아프지 않고 건강해야 평화도 지킨다”는 게 한씨의 지론이다. 주변 공사장 먼지와 자동차 매연 때문에 쉽게 더러워지는 농성장을 치우고, 주변 건물에 들어가 세수를 한다. 이틀에 한 번은 목욕탕에 간다. 뉴스를 꼼꼼히 챙겨보고, 응원하는 시민들이 끊어 준 식권으로 밥을 먹고 나서 활동소식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게시판에 올리는 게 그의 주요 일과다. 매일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 인적이 드물어질 무렵이 하루 중 ‘고비’란다. 그는 “졸립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한데, 그럴 때마다 제가 올린 글에 달린 덧글을 본다”며, ‘감사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겁니다’라는 덧글이 달린 글을 내보였다.
소녀상을 24시간 지키는 건 한씨뿐이지만, 여전히 청년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도 수업이 없는 대학생 이소연(20)씨와 대구 청년 김성근(23)씨가 한씨와 함께했다. 지난해 12월30일부터 소녀상 옆 농성장을 오가며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다. 매주 수요일 대구에서 한·일 합의 폐기 1인시위를 하고 있다는 김씨는 “1인시위 할 때 아직도 청년들이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게 연지 덕분인 것 같아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 미안하기도 해서 대구에서 올라왔다”고 말했다. 한씨는 “고맙다고 하는데 그런 말 들을 때마다 내가 더 고맙다”고 했다.
1000여명 넘는 인파가 찾아들던 수요시위에는 이제 100여명 정도가 오고, 한·일 합의를 비판하는 언론 보도도 부쩍 줄었지만 한씨는 “지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진 게 아니에요. 한 사람을 보고 사람들이 모이고, 그걸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걸 소녀상 농성장에서 깨달았어요. 아직 소녀상 곁에 청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글·사진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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