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질주/양승태 대법원 4년] (상) 브레이크 없는 역주행
‘문경 학살 사건’ 희생자 유족에게
“국가배상금 일부 반환하라” 판결
‘진도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도 패소
‘문경 학살 사건’ 희생자 유족에게
“국가배상금 일부 반환하라” 판결
‘진도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도 패소
지난 1월 경북 문경시 채홍락(73)씨의 집으로 법원이 보낸 소장이 날아들었다. 국가가 ‘문경 학살 사건’ 희생자 유족인 채씨 등을 상대로 부당이득금을 반환하라고 낸 소송이었다. 대법원 판결로 유족들이 받게 될 국가배상금이 애초 받았던 금액보다 대폭 줄었으니 그 차액에 대한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채씨는 황당했다. “이유 없이 가족을 죽이고, 63년 만에 배상금을 지급하더니 이젠 다시 그 배상금을 토해내라고 한다. 그것도 배상금에 대한 지연이자까지 내라니 황당할 따름이다.”
채씨는 문경 학살 사건의 생존자다. 1949년 12월 국군은 문경시 석봉리 석달마을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채씨는 부모를 포함해 9명의 가족을 잃었다. 국가는 무장공비가 저지른 일이라며 사건을 은폐하기 바빴다. 채씨는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다 박정희 정권 당시 반국가행위자로 몰려 두 달 간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결국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해 국가의 위법행위로 학살 사건이 벌어졌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채씨는 재판 과정에서 큰 상처를 입었다. 채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은 2008년 7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서울중앙지법과 고법, 대법원을 일곱 차례나 왔다 갔다 했다. 잠시나마 희망도 있었다.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전인 2011년 9월8일 대법원은 소멸시효(5년)가 지나 배상을 할 수 없다는 1, 2심과 달리 국가가 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3년 뒤 대법원은 ‘희생자에게 3억원씩 주기로 한 돈이 많다’며 배상액을 깎아버렸다. 뚜렷한 기준은 없었다. 단지 다른 과거사 사건들의 손배 액수보다 많다는 이유였다.
채씨는 애초 18억2500만원을 배상받았지만, 법원은 지난해 9월 4억6000만원만 배상하라고 확정 판결했다. 그때부터 채씨는 돈을 구하러 다녀야 했다. 은행 대출도 모자라 사채업자까지 찾아갔다.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 받은 돈은 어떻게든 돌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국가는 지연이자를 따져 2억여원을 더 내라고 한다. 배상금을 돌려주겠다는데 이자 내라고 소송하는 게 말이 되는가.”
대법 판결로 ‘이중 고통’을 겪고 있는 과거사 피해자는 채씨뿐이 아니다. 간첩조작 사건으로 1982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받고 16년 동안 복역한 피해자 박동운(71)씨와 가족들 역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냈지만, 지난해 9월 패소가 확정됐다. 소송을 낸 지 2년7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대법원이 갑자기 손해배상 시효를 기존 3년에서 ‘형사보상결정일로부터 6개월’로 단축한 탓이다. 박씨 등은 손해배상을 1원도 받지 못하게 됐다. 정민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사법부가 과거사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아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이 많다”고 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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