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경계의 학자, 강주원
경계의 학자, 강주원
여행가이드, 한글선생 등 일하며
북한·한국·조선족·북한화교의
삶 곁으로 뛰어들어 연구 진행 “2004년 개성공단 시작 이전에도
남북교역 수치는 잡혔어요
이 수치가 어디서 만들어졌을까?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지요” 강주원(43) 경남대 객원연구위원은 국경처럼, 경계의 학자다. 그의 주제는 인류학이면서, 북한학이고,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북한·한국·중국의 삼국 무역에 관한 연구다. 그는 2004~05년 예비연구를 한 뒤 단둥을 박사논문 지역으로 택했다. 예비연구 당시 머무른 민박집의 아침식사 때마다 조선족 민박집 주인은 대북무역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2006~07년, 대북사업을 하는 한국인 회사의 자칭 ‘술상무’로, 여행사 가이드로, 한글학교 선생으로 일하며 연구를 진행했다. 우리말을 쓰는 네 종류의 인류인 북한, 한국, 조선족, 북한 화교의 삶 곁으로 뛰어든 것이다. 2000년 이후 단둥의 북한 사람과 북한 화교는 2000여명, 조선족은 8000여명, 한국인은 2000명 전후로 추산됐다. 그러나 2010년을 기점으로 변했다. 북한 사람이 중국 공장에 대거 취업하면서 인구가 증가했다. 중국 공장 취업 인원은 2만명으로 추산된다. 한국인은 2010년 남북 경협을 금지한 5·24 조치로 1000명 이하로 떨어졌다. 네 인류가 공존하는 삶은 거리에서, 풍경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북한, 한국 사람들은 문 닫힌 밀실에서 만나고 따로 약속 장소를 잡는다. 거리에서 모른 척하고 만났을 때 함께 술을 마신다. 그래서 강 박사의 키인포먼트(정보제공자)를 소개받기로 했다. 그는 8~11일, 나는 8~16일 단둥에 머물렀다. 매일 북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세관, 기차역, 조선족 거리를 걸었다. “북한이 우리가 상상하는 정도의, 극도로 폐쇄적인 사회라는 고정관념이 강하니까 단둥을, 북한을 못 봐요. 2004년 개성공단에서 첫 제품이 나오기 전에도 남북교역 수치는 통계에 잡혔어요. 그럼 이 수치가 어디서 만들어졌는가?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개성공단 이전부터 남북교역은 단둥에서 이뤄져왔어요. 단둥엔 북한의 전 계층이 나옵니다. 말단 파출부, 노동자, 음식점 복무원, 주재원까지. 도강증이라고, 통행증으로도 나올 수 있어요.” 10여년간의 연구와 체험을 바탕으로 강 박사가 2013년 발간한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는 2012년 재외동포재단 학위논문상을 수상했다. <한겨레>의 단둥 현지 기획은 그의 책에서 시작하였다. 단둥은 한반도 밖에서 경제협력이라는 ‘작은 통일’을 이루는 곳이다. “단동이 어디인가. 수많은 조선 사람이 만주로 드나드는 관문 같은 곳이고 신의주에서 압록강철교를 건너자마자 닿는 곳이다. 수많은 장사꾼들과 고향을 떠나 먹고살기 위해서 신천지 만주를 찾아가는 조선인 가운데는 불온분자도 숨어 있고 반대로 국내 공작을 위해서 만주에서 조선으로 들어오는 독립단들도 많았다. 단동이야말로 이들 통로 가운데 급소와도 같은 곳이었다.”(황석영의 소설 <강남몽> 중에서) 박유리 기자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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