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직 9급 공무원 필기시험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고시촌 골목에서 한 수험생이 걸어가고 있다. 9급 공무원 시험에는 역대 최다인 22만 2650명이 지원해 54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6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공무원시험 학원가 골목을 오가는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들은 학원이나 독서실로 향하는 길에도 인터넷 강의가 흘러나오는 태블릿 피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정부서울청사에 몰래 들어가 7급 공무원 시험 성적을 조작하려 한 공시생 송아무개(26)씨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뉴스를 볼 짬도 없는 듯했다. 슬리퍼와 운동복 차림의 한 공시생은 “신경 쓸 여유가 없다”며 고개를 돌렸다. 9일 치러지는 국가직 9급 공무원 시험을 앞둔 탓에 공시생들은 굳은 표정이었고, 골목은 적막했다.
“니 마음 이해된다.”
임아무개(29)씨가 송씨에 관한 인터넷 기사에 단 댓글이다. 독서실 간판 아래서 단어장을 보고 있던 그는 “댓글이란 걸 처음 달아봤다”고 말했다. 2012년 광주 지역의 한 사범대를 졸업한 임씨는 중등교원 임용시험에만 매달릴 수 없어 학원 강사로 취업했다. 지방에서 강사로 청춘을 바치기엔 전망이 어두웠다. 그는 월급을 아껴 모은 돈 2000만원을 들고 2년 전 노량진 고시촌으로 들어왔다. 그는 “같은 처지에서 보면 합격에 대한 압박감이 얼마나 컸으면 그랬겠느냐. 잘못한 일은 맞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학원가 뒤편 골목은 고시원과 독서실, 뷔페식당, 체력학원, 스터디룸 등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골목은 공시생들에겐 언제나 탈출하고 싶은 풍경이다. 푸드트럭에서 늦은 점심으로 ‘컵밥’을 먹고 있던 이아무개(31)씨는 “3년째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7급 공무원 시험에 4차례 도전했다가 포기하고, 9급 시험에 응시했다. 그는 “그동안 시험에서 여러 번 떨어져 봤는데도 결과가 안 좋으면 건물 옥상에라도 올라가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고 털어놨다.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일부러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는 이씨는 “송씨의 심경은 이해가 가지만 신경 쓸 시간이 없다”며 숟가락을 다시 들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노량진을 찾는 청년들의 발걸음도 끊어지지 않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하고, 5년간 대기업에 근무했던 서아무개(38)씨는 “40대부터 은근히 희망퇴직을 권유하는 회사 분위기를 느꼈다”며 “더 늦기 전에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시를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2년째 공부 중인 그는 “최근 엘리트 인력들이 안정된 직업을 찾아서 공시 쪽으로 쏟아지고 있고, 그만큼 합격 커트라인 점수가 많이 올라서 시험준비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힘없이 말했다.
한번 들어선 ‘공시의 늪’은 빠져나가기도 힘들다. 이아무개(29)씨는 “공무원시험 과목이 일반 기업 채용 준비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며 “게다가 일반 기업은 졸업 예정자를 선호하고 인턴 경력 등 다양한 스펙을 중요하게 생각하니, 공시를 포기하고 다른 기업에 취업하기가 쉽지 않다”고 씁쓸해했다.
이들 중 몇 명이 노량진과 ‘작별’할 수 있을까. 이번 9급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은 54 대 1, 4120명 선발에 22만여명이 몰렸다. 이날 송씨는 구속되기 전 “죄송합니다. 공무원이 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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