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학생회 성명에 동참 잇따라
고려대 의대생 집단 성추행 가해자가 성균관대 의대 등에 다시 진학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사에게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적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는 의대생들의 자정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회는 지난 11일 성명서를 발표해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의사가 되는 것에 대해 제약을 두어야 한다고 밝혔다. 학생회는 성명서를 통해 “중한 성범죄 전과를 보유한 사람이 의사가 되는 것에 법적 제재가 없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의대생의 선발에 고려돼야 할 가치는 성적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성명서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이미 법적 처벌을 받은 자의 직업 선택의 자유와 사회에 시민의 일원으로 참여할 권리는 보장돼야 하지만,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직업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적절한 제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의대 학생회 성명서 발표 움직임은 다른 대학으로 확대되고 있다.
고려대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회 ‘퍼즐’은 11일 성범죄자가 의사가 되는 등 의사 양성 과정에서 윤리의식 수준에 대한 평가나 제약이 없는 현행 법상의 문제를 지적하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곧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학생회는 “‘고대의대 집단 성추행 사건’ 가해자의 성대의대 입학에 부쳐”(가제)란 제목의 성명서에서 “의사는 다른 직업군에 비해 성범죄를 더 경계해야 하지만 의사양성과정에서 윤리의식 수준에 대한 평가나 기타 제약이 전무하다”며 “이번 사건을 기점으로 의사 양성과정 및 의료 행위를 하는 의사에게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의료법 사각지대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도록 의사 집단 내에서 이들에게 자체적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국가뿐 아니라 일선에 있는 의사 선배님들의 행동을 요구한다”고도 덧붙였다.
다른 의대 학생회도 고대 의대 학생회의 자정 촉구 성명에 공감의 뜻을 잇따라 밝히고 있다. 고대 의대 학생회가 다른 대학 의대 학생회에 동참을 요청한 지 하루 만인 이날까지 서울대와 연세대 원주캠퍼스, 순천향대 의대 학생회 등도 ‘연서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세대 원주캠퍼스 의대 학생회는 연서명에 동참하는 한편, 학생회 차원에서 성교육 프로그램과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한 강연 등 재발방지를 위한 예방책 마련에도 나섰다. 엄재웅 연세대 원주캠퍼스 의대 학생회장은 “당장 우리 학교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같은 의대생으로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책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대 의대 학생회는 연서명에 동참하는 학교가 더 늘 것으로 보고, 현재 성명서 공식 발표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최근 2013년 고대 의대 집단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 3명 중 한명인 박아무개씨가 2014년 성균관대 의과대학에 입학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성추행 가해자가 의대에 재입학해도 되는가”를 두고 논란이 제기됐다. ‘직업윤리상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이중처벌’이라는 의견이 맞선 것이다. 박씨를 비롯한 가해자 3명은 술에 취한 채 잠든 동기 여학생을 성추행하고 해당 장면을 핸드폰으로 촬영해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는데, 박씨 외에 또다른 가해자도 지방의 한 의대에 재학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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