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조한아 피디, 진중권 동양대 교수, 문영범 소닉 스튜디오 대표, 노회찬 당선자, 백정현 피디가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사진 백정현 피디 제공
‘노유진의 정치카페’ 시즌1 마감한 백정현 피디
박수칠 때 떠났다. 지난 18일 100회 방송을 끝으로 마침표를 찍은 정의당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이하 정치카페) 얘기다.
‘노유진’은 노회찬(60) 전 정의당 대표와 유시민(57) 작가, 진중권(53) 동양대 교수의 성을 따 만든 이름이다. 이들은 매주 다양한 정치 현안을 분석하는 방송으로 청취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제작진에 따르면, 2년여 동안 내려받기 횟수만 1억2000만 건을 기록했다고 한다.
노회찬 정의당 당선자는 18일 “2014년 5월27일 첫 방송을 할 때만 해도 이 팟캐스트가 2년씩 갈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페이스북에 장문의 소회를 남겼다. 그는 “올드 미디어에 지친 사람들에게 뉴미디어가 새로운 방식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도 새롭게 발전할 계기를 갖게 된다”며 “뉴미디어가 이미 뉴데모크라시(새로운 민주주의)를 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노유진>이 충분히 보여주지 않았는가!”라고 자평했다.
이쯤 되니 노유진을 한 자리에 모은 이가 궁금해졌다. 정치카페를 연출한 진짜 ‘배후세력’ 백정현 피디(PD·정의당 뉴미디어 실장)를 19일 <한겨레>가 인터뷰했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 100회를 끝으로 마지막 방송을 마친 소회는 어떤가.
“보통 정당에서 일하는 당직자들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경험을 하기는 힘들다. 선거 기간 동안에만 ‘정당의 당직자’라는 이름으로 국민과 접촉할 수 있다. 제한된 기간동안에만 소통하는 채널이 열리는 구조다. 당원들과의 접촉이 거의 전부인데, 2년 동안 출연자들과 방송을 통해서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은 규모의 청취자들과 소통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 그런데 제가 인터뷰 대상이 되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웃음)
- 언제, 어떻게 정의당과 인연이 됐나.
“2011년 <옥천신문> 편집국장 임기를 마치고 대학원에서 정치학 공부를 하고 있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대학원 동기이자 당시 정의당 사무총장이었던 권태홍 총장이 정의당에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했다. 2013년 봄부터 현재까지 정의당 당직자로 일하고 있다.”
- <정치카페>는 어떤 계기로 만들어진 건가.
“3년 전 이맘 때, 당원들이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웹진을 만들었다. 군소 정당이나 진보 정당 같은 경우는 인터뷰 기사 하나 내기도 힘들다. 당직자 신분이었지만, 기자 경력을 살려 선거 출마자들을 인터뷰하고 지역의 일꾼들을 발굴해 소개했다. 그 일을 1년 쯤하다가 당원들만의 소통으론 정치 국면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국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는 문제 의식이 내부에 꾸준히 있었다. 그 무렵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정의당에 입당했다. 2013년 12월, 진 교수를 주요 출연진으로 생각하고 방송을 구상하다가 시작하게 된 것이 <노유진의 정치카페> 팟캐스트 방송이었다.”
- <정치카페> 방송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
“매주 방송 구성과 시나리오 작성, 녹음 뒤 편집, 발행까지 거의 모든 걸 담당했다. 홍보나 외부 공개 방송 등 인력이 필요한 일들은 정의당 뉴미디어실 직원들이 늘 결합해줬다.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
100회 방송 내려받기 횟수 1억2000만건 기록 김영익 교수 ‘화폐전쟁’편 가장 폭발적 반응 유시민-진중권 긴장관계, 방송 3개월뒤 사라져
수더떨듯 말하고 청취자 피드백 받아 돌려줘 정치와 대중이 직접 소통하는 시간돼 뿌듯 ‘노유진’ 공통점, 가장 정치를 사랑하는 사람 시즌2? 출연자 섭외끝났고 최종결정만 남아
- 방송 구성은 어떻게 했나.
“처음에는 파일럿 형태로 시작했기 때문에 편성 개념이 전혀 없었다. 이슈과 되는 주제 하나를 선정해 이야기했고, 이야기가 길어지면 청취자들이 듣기 좋게 1부, 2부로 나눴다. 방송에 대한 호응이 너무 좋았고, 계속 방송을 해야겠다고 판단한 다음부터 방송을 1부, 2부로 나눠서 업로드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1부는 유시민 작가가 진행하는 ‘타임라인’으로, 정치 시사의 핵심을 다루는 꼭지로 만들었다. 2부는 청취자들이 정치시사 중심에서 이탈하지 않게 하면서도 좀 더 깊이 있게 고민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줄 외부 전문가를 초정해서 대화를 나누는 ‘100분 토크’로 편성해 2년 동안 운영했다.”
18일 오후, '노유진의 정치카페' 출연진들이 여의도의 한 녹음실에서 마지막 방송을 하고 있다. 사진 백정현 피디 제공
- 가장 기억에 남는 일 3가지를 꼽아본다면.
“18일 밤에 마지막 방송을 업로드했는데, 게시판에 ‘아쉬움이 남는다’는 청취자 댓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그런 게시물을 읽어보면 여과 없이 진심이 느껴진다. 아쉽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다. 청취자들에게 고맙다.
첫 방송하던 날도 기억난다. 노회찬 전 대표와 유시민 작가는 통합진보당 팟캐스트였던 <저공비행> 방송을 통해서 호흡을 맞췄던 사이였다. 진중권 교수는 그런 경험이 없던 분이다. 아는 분들도 있겠지만, 열린우리당 시절에 유 작가와 진 교수가 설전도 주고 받았던 그런 사이였다. 첫 방송에서 이분들이 어떤 호흡을 맞출지 긴장하면서 지켜봤다. 두 사람의 미묘한 긴장관계들이 방송 시작하고 3~4개월쯤 사라졌다. 이후에는 호흡이 착착 맞았던 것 같다.
방송에서 여러 에피소드를 다뤘는데,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내려받기를 기록했던 에피소드가 김영익 서강대 교수가 출연한 66회 ‘화폐전쟁과 화폐개혁’ 방송이었다. 김 교수는 여의도 증권가에서 유명한 애널리스트(분석가)였고, 정치카페 방송에서는 주식시장의 문제를 처음 다룬 기획이었다. 사실, 정치·시사 팟캐스트에서 금융 정책도 아니고 주식시장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데 대해 부담감은 있었는데, 이 에피소드에 가장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다. 이틀 만에 내려받기 백만건을 찍었다. 그 에피소드를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정치가 말하려는 것과 대중이 듣고 싶은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걸 느꼈다. 이렇게 정치와 대중의 간격을 좁혀가는 게 <정치카페>의 역할이었고, 대중이 정치에 바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 청취자들의 호응을 간접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는 방송 내려받기 기록이 궁금하다.
“사안에 따라 100만 건 이상 다운로드 되고, 보통 80만 건 다운로드가 됐다. 데이터 무제한 이용 요금제가 출시되면서 다운로드 규모가 영향을 받았다. 엘티이(LTE) 요금이 출시되면서 데이터 이용 요금 부담 때문에 방송을 다운로드를 해서 듣는 분들이 늘었다. 그러다 엘티이(LTE) 요금제 중에서도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이용하는 상품들이 확산되면, 다운로드 대신 스트리밍으로 듣는 분들이 생겼다.”
- 2년간 호흡한 <정치카페> 출연자들은 어땠나.
“짧은 정치경험이었지만, 세 사람의 공통점은 대한민국에서 정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정치에 대해서 근원적인 애정이 없이는 꾸준히 열정적인 방송을 만들 수가 없다. 차이점이라면, 노회찬 당선자는 촌철살인이다. 유시민 작가는 과학적 근거를 언급하고 돗자리를 까는 분이다. 이번 총선 결과를 예측한 것 빼고는 대체로 적중했다고 본다. 정치적 사안의 맥락을 읽어내는데는 대한민국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진중권 교수의 활약이 가장 아쉽다. 특유의 통찰력과 직설이 있는 분인데, 사회를 맡고 대본에 충실하느라 본인이 발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게 가장 아쉽다. 방송을 통해서 진중권 교수를 접하시는 분들은 진 교수의 트윗 글을 보고 놀랐다고 하는 분도 있었다.
- <정치 카페>가 한국 정치를 위해 어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은 ‘정치가 대중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느냐’라는 물음에 답했다는 것이다. 정치라고 하면, 보통 다 외면하고 혐오하기까지 하지 않나. 사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을 거둬내고, 시민들 스스로가 정치의 주인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지금까지 정치와 정당이 국민에게 말 거는 방법은 늘 언론이라는 매개를 통해서였다. 신문과 방송이라는 미디어를 통해서 말을 걸어야 했고, 그 사이에 어쩔 수 없는 문제들이 있었다. 왜곡이나 편향, 의도적인 조작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정치카페>는 ‘수다’를 통해서 우리 정치가 갖고 있는 함의를 정확하게 대중에게 전달했다. <정치카페>가 흥행하자, 지난해 6월,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진짜가 나타났다>를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도 정당들이 팟캐스트를 많이 만들었다. 문제는 정당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했다는 점이다. 주장을 있는 힘껏 외쳤을 뿐이다. 방식이 좀 틀렸다고 본다. <정치카페>는 편안하게 대화하고 수다떨 듯이 얘기했고, 청취자 피드백을 받아서 다시 돌려줬다. 이런 과정의 전형을 보여줬고 시도했다. 앞으로 여러 정치인들이 대중과의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채널들을 각자 만들어보려고 노력할 것 같다.”
- 진보적인 성향의 팟캐스트 방송이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니, 관심을 끌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폭로 하는 등 음모론을 생산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팟캐스트 시장이 진보 중심이고, 음모론을 생산한다는 등의 논란은 한국적인 상황에 불과하다. 정치가 정상화되고 언론이 바로 서면, 논란은 다른 차원에서 해소될 것이다. 외국의 팟캐스트만 보더라도 정치·시사 팟캐스트 방송이 주류가 아니다. 한국에서 정권 교체가 되고, 언론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외국처럼 교육이나 문화 콘텐츠가 등의 콘텐츠가 풍성해질 것이다.”
- <정치카페> 인지도나 충성도가 높았다. 정의당의 총선 결과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가.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인데, 총선 결과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정의당 총 비례대표 득표수가 172만표고, 7.23%획득을 했다. 만족할 만한 수치는 아니지만, 유권자 중에 정의당 팟캐스트 방송을 청취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150만~200만명 사이로 알고 있다. 정의당에 한 표를 주신 분들 중에 대부분은 <정치카페>를 한 번쯤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 콘텐츠가 지상파 방송이나 기존의 전통적인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었으면, 선거 결과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4·13 선거 기간 동안 주류 언론이나 종편이 국민의당에 할애했던 시간들을 보면 엄청났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 악영향이든, 긍정적인 영향이든 (기존) 미디어가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 악조건 속에서도 뉴미디어 영역에서 <정치카페>가 소기의 역할은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이 방송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웃음)
- <정치카페> 시즌2를 제작할 계획도 있나.
“시즌2 출연자도 나름 선정했고, 빠르면 다음 주부터라도 방송을 편성했으면 한다. 정의당의 최종 결심이 남아 있는 상태다. 정의당에는 ‘노유진’만 있는 게 아니구나 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거다. 김종대 당선자는 검증받은 말꾼이고, 김종대 당선자 이상의 분들도 있다. 시즌2 팟캐스트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당원이 아니지만 저희와 방송을 같이 할 수 있는 유력인사를 참여시키는 기획을 하고 있다. 노유진 세 사람이 다시 모이는 계획은 없지만, 연령층을 차별화해서 기획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 마지막 방송을 해서 아쉬운 점이나, 다 못한 이야기가 있나.
“사실 ‘노유진’ 세 사람은 정치 뿐만 아니라, 정치를 망라해서 인문학의 보고 같은 분들이다. 시간이 충분했다면, 100분 토크에서 맹자, 플라톤 등등 동·서양의 정치 고전들을 다뤄보고 싶었다. 유 작가님이나 노 대표님은 사실 ‘요리 덕후’들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요리 특집을 해보자고 출연자들 무지 졸랐었다. 아쉽게도 성사되지 못했다. 매주 정치 현안들이 너무 치열했다.” (웃음)
-마지막 방송 엔딩곡은 ‘어머니’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방송을 마치고 나와서 진중권 교수가 ‘어머니’를 엔딩곡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유는 가사(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 부둥켜안을 때, 모순 덩어리 억압과 착취 저 붉은 태양에 녹아버리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우리의 다리 저절로 덩실 해방의 거리로 달려가누나…”)를 들어보니 알겠더라. <정치카페>가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시작한 방송이었고, 가사에 그대로 녹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