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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못말리는 ‘자본’사회…‘학벌’마저 손들었다

등록 2016-04-28 15:26수정 2016-04-28 22:23

‘학벌없는 사회’ 18년만에 해산
“20대들 모습 보며 자본사회 절감”

부모 배경 없이 학벌 갖기 어렵고
본인 노력으로 격차 메울 수 없는
대물림 사회로의 변화 반영
지난 26일 서울 용산구 한 커피숍에서 만난 이철호 전 학벌없는사회 대표. 사진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지난 26일 서울 용산구 한 커피숍에서 만난 이철호 전 학벌없는사회 대표. 사진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지난 18년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학벌없는사회’는 단체로서의 활동을 중단하고자 한다. 이는 학벌사회가 해체되어서가 아니라 그 양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학벌은 더 이상 권력 획득의 주요 기제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1998년 출범해 대학 평준화, 서울대 해체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교육에 관한 우리 사회 인식에 큰 영향을 끼쳐왔던 ‘학벌없는사회’가 지난달 25일 마지막 총회에서 내놓은 해체선언문 중 일부다. 선언문은 “노동 자체가 해체되어가는 불안은 같은 학벌이라고 밀어주고 끌어주는 아름다운(?) 풍속조차 소멸시켰다. … 자본의 독점이 더 지배적인 2016년 지금은 학벌이 권력을 보장하기는커녕 가끔은 학벌조차 실패하고 있다. 학벌과 권력의 연결이 느슨해졌기에 학벌을 가졌다 할지라도 삶의 안정을 유지하기 힘들다”며 ‘이유있는 퇴장’에 대해 설명했다.

이 단체의 해산은 계층이동의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출신 계층에 따라 삶이 대물림되는 사회가 도래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다. 지난해 ‘○○대 나오면 모하냐.. 백순데..’라는 한 명문대 졸업생의 펼침막이 등장했듯 ‘좋은 학벌=계층 상승’이라는 공식은 힘을 잃고 있다. 홍세화 전 학벌없는사회 대표는 “학벌에 의한 기득권 구조가 여전히 있지만 그보다는 자본의 위력이 너무 강력하다는 것”이라며 “이젠 부모의 배경 없이는 학벌을 갖기도 어렵고, 가지더라도 당대의 노력으로 부모의 격차를 메울 수 없는 정도가 됐다는 인식”이라고 말했다.

오랜 격론 끝에 이 단체의 이철호(54) 전 대표와 회원 300여명은 ‘자발적 해체’를 선택하고 지난해 가을부터 해산 준비에 들어갔다. 갖고 있던 운영비를 0원으로 만들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회비도 걷지 않았다. 마지막 총회를 기점으로 대표전화도 이젠 없는 번호가 됐다. 1명의 상근자도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 26일 만난 이 전 대표는 “우리 단체의 20대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가 더 이상 학벌사회가 아니라 자본사회임을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90년대만 해도 학벌 피라미드의 중추에 있는 대학의 재학생들이 우리 단체에 들어와 학벌을 타파하자며 뛰었다. 그런데 최근 10여명 남은 대학생 회원들은 모임을 조직해도 3주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편의점 알바 하러 가고, 등록금 대출 갚으러 일하러 가고, 학점 관리하러 간다. 이는 아이들 탓이 아니다”라고 현실을 전했다.

이 선언문은 학벌사회의 정점으로 간주되는 서울대 학생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지난 24일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이 단체의 해산선언문 일부가 올라오자 당일 최고 조회수, 추천수 289건(28일 기준)을 기록했다. 이 글을 올린 서울대 학생(잊지**)은 “요약: ‘스카이’(서울대·고대·연대) 나와도 흙수저들은 ‘개털’이라 불쌍해서 깔 수가 없다. 깔 건 학연지연혈연이 아니라 자본”이란 주석을 달았다. 글 밑으로 “사회적 지위를 오르내리는 사다리의 종말을 보여주는 것 같아 무섭고 허탈한 기분이다. 이미 학벌의 사다리는 자본에 의해 붕괴되었다”(애큰**), “이토록 섬뜩하게 우리나라가 망가지고 있다고 느껴보는 건 처음이다”(따뜻***) 등의 댓글이 달렸다.

출범 초기 운영위원·사무처장 등을 잇달아 맡았던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어떤 의미에선 한 시대가 매듭됐다고 볼 수 있다”며 “대학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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