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사회부 법조팀에서 일하는 최현준 기자입니다. 검찰과 법원,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취재합니다. 이곳이 지금 정운호(51·남)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사건으로 벌집 쑤신 듯 시끄럽습니다. 오늘은 이 사건을 알기 쉽게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사건은 꽤 복잡합니다. 등장인물이 20여명에 이르고, 사건 방향도 여기저기 갈래를 치고 나갑니다. 정 대표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시끄러운 걸까요? 그를 둘러싼 ‘욕망의 용광로’에 한번 들어가 보시죠. 웬만한 막장 드라마보다 재밌습니다.
한 달쯤 전, 교도소에 면회 간 변호사와 수감된 의뢰인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집니다. 급기야 변호사가 폭행 혐의로 의뢰인을 고소합니다. 변호사는 2년 전까지 부장판사를 지낸 ‘따끈따끈한’ 전관 변호사 최아무개(46·여)씨, 의뢰인은 자수성가한 수천억원대 자산가이자 화장품업계의 거물 정 대표입니다.
최 변호사는 수감된 정 대표에게 보석을 약속하고 50억원의 돈을 받았지만, 실패(했다고 정 대표는 주장)합니다. 정 대표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으니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최씨는 ‘여러 사건을 수임한 대가이니 그럴 수 없다’고 버팁니다. 50억원을 놓고 벌어진 이 싸움은 언론에 보도되고, 결국 지금과 같은 난장판이 펼쳐집니다.
잠시 정 대표가 수감된 사연을 보시죠. 정 대표는 2012~2014년 ‘동양의 라스베이거스’ 마카오에 가서 도박을 합니다. 카지노 브이아이피 룸에서 판당 수억원씩 걸고 바카라 게임을 즐겼습니다. 100억원 넘는 돈을 썼는데, 현지에서 외상을 하고, 한국에서 갚는 ‘환치기’ 수법을 씁니다. 이런 사실은 지난해 하반기에 드러납니다. 결국 정 대표는 상습도박 혐의로 지난해 말 1년 형을 선고받고, 올해 4월 2심에서 8월 형을 선고받습니다.
수천억원대 자산가가 수사와 재판으로 위기에 처하자 법조계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정 대표의 ‘간택’을 받습니다. 4년 전 개업해 서초동 사건을 싹쓸이한다는 소문이 있는 ㅎ변호사입니다. ㅎ변호사는 경찰과 검찰 수사 단계에서 정 대표의 변호를 맡았고, 신통방통한 결과가 나옵니다. 정 대표의 도박 혐의에 대해 검찰이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한 것입니다. ㅎ변호사는 “수임료 1억5천만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다음 주자는 최 변호사입니다. ㅎ변호사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정 대표가 재판에 넘겨지고 1년 형을 선고받자, 이번엔 법원에서 부장판사를 지낸 최 변호사가 나섭니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것처럼 ‘보석’은 실패하고, 50억원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집니다.
브로커도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법조 브로커 이아무개(56·남)씨는 정 대표의 재판을 맡은 판사를 귀신같이 찾아내 접촉합니다. 이씨와 교육과정 동문으로 인연을 맺은 판사가 정 대표의 재판을 맡기도 합니다. 그와 식사 자리를 가진 사실이 드러난 한 판사는 결국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경찰 담당 브로커로 모 주간지 기자라는 박아무개(43·남)씨가 등장합니다. 그는 2013~2014년 정 대표가 경찰 수사를 받을 때 이들에게 로비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법조계에서 활활 타오른 불은 화장품업계로 옮겨붙습니다. 정 대표가 화장품 사업을 키우면서 했던 문제적 행위들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시 브로커가 등장합니다. 앞서 판사 로비에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 브로커 이씨는 네이처리퍼블릭의 서울메트로 입점 로비를 한 것으로 알려졌고, 또 다른 브로커 한아무개(58·남)씨는 네이처리퍼블릭의 롯데면세점 입점 및 군납 관련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고 간 돈은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고, 이들의 로비 대상으로는 재벌 2세와 검·경·군의 고위직,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청와대 인사 등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공은 검찰로 넘어가 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아마도 검사장 출신 ㅎ변호사에 대한 처분이 바로미터가 될 것입니다. 제대로 수사하지 않을 경우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을 테니까요.
정 대표는 극적인 이야기를 가진 사람입니다. 남대문시장 과일상으로 시작해, 화장품업계의 거물로 우뚝 섰고, 지금은 도박과 법조계 로비 의혹으로 위태롭습니다. 조만간 그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나올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제목은 ‘욕망의 리퍼블릭’이 어떨까요?
최현준 사회에디터석 법조팀 기자 haojune@hani.co.kr
최현준 사회에디터석 법조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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