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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뉴스AS] 흉악범 얼굴공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록 2016-05-09 16:22수정 2016-05-09 17:27

경기도 안산 대부도에서 발견된 토막시신 사건의 용의자 조모씨가 긴급 체포돼 5일 오후 경기도 안산단원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안산 대부도에서 발견된 토막시신 사건의 용의자 조모씨가 긴급 체포돼 5일 오후 경기도 안산단원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안산 토막살해 용의자 얼굴, 언론들 앞다퉈 공개
온라인 커뮤니티엔 주변인 신상털기로 ‘2차 피해’
공익성 이유대지만 선정성만 부추기는건 아닌지…
이번 연휴 한 청년의 사진이 SNS상에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일대에서 발견된 토막 주검 살해사건의 용의자로 구속된 조아무개(30)씨의 페이스북 사진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7일 페이스북 페이지에 “서른살 조○○, 이렇게 생겼습니다”라는 ‘드립’과 함께 조씨의 사진을 올렸고, <동아일보>는 “게임기획 전문가를 꿈꾼 평범한 청년에게 대체 무슨 일이…”라며 조씨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또 다른 사진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체포된 조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안산단원경찰서에서 나서는 사진이었습니다. 경찰은 이날 마스크나 모자 등으로 조씨의 얼굴을 가리지 않고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조씨의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를 가져온 점으로 볼 때 공개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어 <연합뉴스>는 이런 장면을 보도하면서 “멀쩡해서 더 충격”(중략)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훤칠한 외모…평범해서 더 무섭다” 등의 부제목을 달아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이 사진들은 주말 내내 SNS와 포털 사이트에 도배됐습니다.

‘흉악범’ 신상 공개를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2004년 22명을 숨지게 한 연쇄살인범 유영철씨 사건을 계기로 시작돼, 2009년 경기서남부지역 연쇄살인범 강호순씨 사건을 통해 논쟁이 본격적으로 불거졌습니다. 당시 <조선일보>는 “‘얼굴 공개해야 한다’ 압도적…‘관행’ 바꿔야”라는 기사를 통해 강씨 얼굴 공개의 정당성을 선전했습니다. <중앙일보>도 “조인스 ‘강○○’ 얼굴 106만 클릭…네티즌 95% 신상 공개 찬성”이라는 기사에서 강씨의 얼굴을 공개한 “기사의 IP당 조회수는 106만 건을 넘어섰다”며 “조인스닷컴이 생긴 이래 처음”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이들 언론은 일제히 국민의 알권리와 공익 보호, 흉악범의 인권보다는 범죄 예방 효과가 우선이라는 등의 논리를 앞세웠습니다. 당시 용의자들을 향한 대중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는 이를 부추겼습니다.

2010년 3월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사건의 김길태씨가 검거됐을 때부터 다수 언론은 흉악범죄 용의자의 얼굴과 신상을 본격적으로 공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곧이어 법적 근거도 마련됐습니다. 2010년 4월 개정된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대한 특례법’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피해가 중대하며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으며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범죄 예방 등 공공 이익을 위해 필요하면 수사기관이 피의자 이름과 얼굴을 공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해선 안 된다는 단서 조항이 달렸습니다. 안산단원경찰서가 조씨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기로 한 것은 이 법에 근거한 것으로 합법적인 조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형사피고인은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은 일부 언론들이 치부하듯 단순한 ‘관행’이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입니다. 법무법인 양재의 김진형 변호사는 “단지 범죄의 혐의가 인정될 뿐인 ‘피의자’에 대해 마치 유죄가 확정된 것처럼 기사를 게재하고 실명과 얼굴까지 공개하는 것은 피의자의 인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초상권 침해일뿐만 아니라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할 수도 있는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말합니다. 김 변호사뿐 아니라 그동안 같은 이런 논쟁이 붙을 때마다 인권단체들이 주장했던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하고 피의자 신상을 공개한 행위가 가져온 피해 사례들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2012년 9월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 때 <조선일보>는 1면에 무고한 시민의 사진을 ‘성폭행범’ 얼굴이라며 공개하는 대형 오보를 낸 바 있습니다. 당시 용의자로 얼굴이 실린 ㅈ(당시 21살)씨는 <한겨레> 기자와 만나 만신창이가 된 생활을 털어놨습니다. (▶바로 가기 : 조선 오보 피해자 “내가 얼굴공개 당해보니...”)

다른 피해 사례도 있습니다. 2006년 제주도에 사는 김아무개(당시 24살)씨는 살인·방화사건 용의자로 경찰에 체포된 뒤 실명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습니다. 김씨는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경찰의 일방적인 브리핑으로 살인범이 돼 겪은 고통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피의자의 가족과 지인 등에 대한 ‘2차 피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당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조씨와 헤어진 옛 여자친구 신상까지 공개되며 누리꾼들의 비난성 글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앞서 강호순씨의 실명이 공개된 뒤 강씨와 동명이인들의 미니홈피에는 “당신이 살인마냐”는 글이 무더기로 올라왔고, 포털에는 강씨 아들 이름과 개인 정보가 떠돌았습니다. 경찰은 뒤늦게 “조씨의 가족·주변인 등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거나 모욕적인 글을 인터넷 등에 게시할 경우 명예훼손, 모욕죄 혐의를 적용해 수사할 예정”이라고 9일 밝혔습니다.

형평성의 문제도 있습니다. 경찰이 피의자 얼굴을 공개할 때 기준이 모호합니다.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피해가 중대하다는 판단 기준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란 재판을 통해 증명돼야 하는 것이지 경찰이 ‘판단’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2014년 3월 헌법재판소는 보험사기 피의자 정아무개씨가 “경찰이 수갑 찬 채 조사받는 모습을 촬영하도록 허가해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위헌) 대 2(각하) 의견으로 위헌 결정한 바 있습니다. 헌재는 “원칙적으로 ‘범죄사실’ 자체가 아닌 ‘피의자’ 개인에 관한 부분은 일반 국민에게 널리 알려야 할 공공성을 지닌다고 할 수 없다”며 “이에 대한 예외는 피의자가 공인으로서 국민의 알권리의 대상이 되는 경우, 특정강력범죄나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을 위한 경우, 공개수배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등에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될 수 있을 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헌재는 “피의자의 얼굴은 개인의 인격주체성을 결정짓는 가장 기본적 정보로 정보화 사회에서 얼굴이 공개되면 파급 효과가 강력하다. 재판을 통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낙인을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사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수사기관으로서는 모자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헌재는 “경찰의 촬영 허용행위는 언론 보도를 보다 실감나게 하기 위한 목적 외에 어떠한 공익도 인정할 수 없다”고도 밝혔습니다. 정씨의 혐의가 앞서 언급한 흉악범들과 경중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헌재의 판단의 골자는 간과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얼굴이나 신상을 공개한다고 ‘범죄 예방효과’가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유영철, 강호순, 조두순 등 흉악범죄자들의 얼굴을 공개했던 언론들은 ‘범죄 예방효과’를 내세웠지만 피의자 얼굴 공개가 가져온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이들 모두 여전히 구금돼있기 때문에 얼굴 공개로 인한 재범방지 효과도 논할 바가 못됩니다.

결국 “전형적인 상업주의 저널리즘”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헌법)는 “이들의 얼굴을 공개한다고 해서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건 하나도 없다”며 “(용의자의) 가족 또는 그 사람이 속했던 다른 공동체에 누를 끼치는 부정적인 파급효과만 커졌다”라고 지적합니다. 한 교수는 “사회적 응징 심리를 반영하기 위해 공개한다고 해도 1심 법원 판결 뒤 혐의가 확정되고 나서 공개해도 늦지 않다. (특례법이 있지만) 공개해야겠다면 법을 개정해서 수사기관이 아니라 판사의 결정을 받을 수 있는 방법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외국에서 용의자 얼굴 공개하는 사례가 많지만, 좋지 않은 사례를 관행적으로 반복하고 있을 뿐이며, 특히 디지털 시대에 외국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도 따라한다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누리꾼의 웃지 못할 지적을 보겠습니다. 박상현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피의자의 사진을 잘 보면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며 “피의자가 입고 있는 후드티의 상표를 경찰이 테이프를 붙여 가려준 것이다. 어느덧 우리나라는 재판받기 전의 인권은 지켜주지 않아도 기업의 권리만큼은 알아서 저다지도 곱게 지켜주는 세상이 되었다”라고 썼습니다.

흉악범죄 용의자의 얼굴 공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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