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을 재차 강조한 가운데,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12일 브리핑을 자처해 “노조가 성과연봉제 도입을 반대하며 논의를 거부하는 것은 동의권 남용”이라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일부 노동조합이 성과연봉제 도입에 노조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을 겨냥한 것이다. 노조 쪽은 “고용부 장관이 불법을 부추긴다”며 반발했다.
이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임금체계 개편은 아들·딸 일자리를 위한 약속이자 법적 의무”라며 “공공·금융기관이 성과중심 임금체계 개편을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장관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 임금총액이 감소하지 않고, 다수가 수혜 대상이며 누구든 성실히 일하면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며 “노조나 근로자들이 무조건 반대하면서 논의를 거부하는 경우엔 동의권 남용으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장관은 ‘성과연봉제 도입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아니라고 보느냐’는 질문엔 “개별 기관마다 사정이 다 다르다”고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노동자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경우 노조의 동의를 받도록 근로기준법에 명시돼있는데, 일부 기관에서 노조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한 것이 불법이라는 노동계 주장에 대해선 답변을 피한 셈이다.
2012년 대법원은 직원 과반의 동의 없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학교재단을 상대로 노동자들이 낸 소송에서 “일부가 불이익을 받고, 일부가 이익을 보는 경우 불이익으로 봐야 하고, 취업규칙 변경은 근로자 전체의 의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또 지난해 대법원은 “취업규칙의 변경 전후의 문구를 기준으로 취업규칙이 불이익하게 변경됐음이 명백하다면, 취업규칙의 내용 이외의 사정이나 상황을 근거로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은 성명을 통해 “노동자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임금체계를 불리하게 변경해도 된다는 메시지”라며 “정부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정당한 권리 행사를 ‘남용’이라 규정하고 이를 제한하는 것은 초헌법적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중부발전·엘에이치(LH)공사 등이 노조의 동의없이 회사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한 것을 노동청에 고소·진정을 한 상태에서, 고용부 장관이 이같은 발언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고용부 장관의 발언은 개별 고소·진정사건 조사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발언”이라며 “고용부가 스스로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0일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불법도입’ 논란과 관련해 자체 진상조사단을 꾸리겠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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