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확대 논란
정부 공공기관 성과제 확대 추진
시행 현장선 “대국민 서비스 뒷전”
해외서도 강제할당식 반대 확산
“팀워크 필요한 조직 등 부적합”
“평가지표 객관화 마련을” 지적도
정부 공공기관 성과제 확대 추진
시행 현장선 “대국민 서비스 뒷전”
해외서도 강제할당식 반대 확산
“팀워크 필요한 조직 등 부적합”
“평가지표 객관화 마련을” 지적도
정부가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현행 간부급에서 일반직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노조 쪽과의 갈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성과급 도입이 실제 공공기관의 생산성과 공공서비스 질 향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성과급을 부분 도입한 현장에서는 “성과 달성을 위해 오히려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줄세우기를 위한 억지 평가를 한다” 등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팀워크가 필요한 조직, 성과 측정이 어려운 조직에는 적합하지 않다” “납득할 만한 평가 기준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등의 지적이 나온다.
■ “평가를 위한 평가” 지난 12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기자브리핑에서 “2010년부터 시행된 공공기관의 간부직급에 대한 성과연봉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질문에 “공공기관의 생산성 향상과 공공성 이행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미 성과급을 부분 도입한 공공기관 직원들은 현실에서는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 정책자금으로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주는 신용보증기금(신보)은 지점별로 성과를 평가해 성과급을 지급한다. 지점별 성과평가 요소 중 하나는 ‘균등 성과 달성도’다. 이전에는 ‘조기 달성도’를 따져 일찍 목표를 달성하는 지점이 좋은 등급을 받았는데 각 지점이 미리 5월(상반기), 11월(하반기)쯤에 목표를 달성해버리고 6월이나 12월에는 고객에게 대출을 꺼리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 탓에 월마다 균등하게 성과를 냈는지를 보는 ‘균등 성과 달성도’ 지표를 또 도입한 것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신보 지부 관계자는 “실적을 채우기 위해 대출 만기가 두세달 남아 있는 고객에게 미리 연장신청을 해달라고 하는 등 고객 중심 서비스가 아니라 기관 중심 서비스가 됐다”며 “성과급 도입 이후 누군가는 꼴찌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평가를 위한 평가’를 하는 이상한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최근 조선·해운산업 부실 책임론이 제기되는 산업은행의 15년차 직원 ㄱ씨는 “현재 산은의 부실은 과거 경영진들이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좋은 성과평가를 받기 위해 해운·조선 관련 고위험 자산을 인수하면서 발생한 것”이라며 “개인별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성과경쟁 때문에 부실대출이 생길 수 있고, 이에 따른 손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준이 뚜렷하지 않은 평가지표에 대한 반발도 크다. ㄱ씨는 “승진을 위해 개인별 인사평가를 받고 있긴 하지만 구체적인 평가기준이 직원들에게 공개돼 있지 않고, 결과에 대해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며 “성과연봉제를 통해 무임승차자를 막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납득 가능한 평가 기준조차 만들지 않고 몰아붙이는 정부 태도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인사평가제도 현황과 발전방안에 관한 연구’를 보면, 인사평가를 실시하고 있는 501개 사업체(300인 이상) 중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워야 하는 ‘등급 강제 할당식’ 성과평가를 하는 곳이 67.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사평가의 어려운 점으로는 평가자의 주관적 오류 방지의 어려움(62.1%), 공정성 확보 미흡(14.6%)이 꼽혔다.
■ 해외에서도 논란 커져 우리보다 먼저 성과급이 보편화됐던 해외에서도 개인별 성과평가와 상대평가식(강제할당식) 성과평가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익스피디아·어도비시스템스 등의 해외 기업들은 최근 들어 강제할당식 인사평가를 철회하고 있다. “상대평가 방식이 종업원의 좌절감과 분노만 쌓이게 할 뿐 성과를 내는 기업문화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직후인 2009년 4월 미국의 금융안정위원회(FSB)는 금융회사의 ‘건전한 보상체계 원칙’을 발표해 “보상체계를 개선해 성과주의로 인하여 리스크가 확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금융기관들의 성과지상주의였다는 비판 여론이 높았기 때문이다.
양혁승 연세대 교수(경영학)는 “점점 창의력과 혁신의 발휘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되고 있고, 특히 서비스 정신이 필요한 조직일수록 팀워크와 협업 장려 쪽으로 조직문화를 바꿔야 하는데, 일률적인 개인별 성과연봉제 도입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동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도 “팀워크에 기반한 노동 과정을 필요로 하는 조직, 제품의 차별성이나 품질 향상이 최우선 목표인 조직, 성과 측정이 어려운 조직, 직군이 많은 조직의 경우 강제할당식 성과평가가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성과연봉제가 성과를 내려면 직원간 차등을 만드는 과정이 직원들에게 납득 가능해야 한다”며 “평가지표를 객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노동자들과 먼저 논의해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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