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무악동 무악2구역 재개발 현장인 ‘서대문형무소 옥바라지 여관 골목’을 찾아 “철거를 중단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재개발사업조합 사무실에 박 시장(가운데)과 골목 주민들(오른쪽 앉은 이들), 재개발사업조합 사무국장(왼쪽) 등이 모여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 종로구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에서 재개발사업조합이 주민들을 강제 퇴거시키려 하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골목 철거를 중단시키겠다”고 선언했다.
17일 아침 6시40분께 조합 쪽 용역업체 직원 60여명이 옥바라지 골목에서 농성하던 주민과 시민단체 회원 50여명을 끌어내면서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주민과 녹색당,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등으로 구성된 옥바라지 골목 보존 대책위원회 회원 50여명은 유일하게 철거되지 않고 남아 있는 ‘구본장 여관’에 머물고 있었다. 1시간30분가량 대치했으나, 용역 직원들이 소화기를 뿌리며 이들을 제압했고, 집기도 들어냈다. 평소 심장질환을 앓던 시민단체 회원 한 명이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소식을 듣고 오전 11시30분께 현장을 찾은 박 시장은 “서울시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 공사는 없(게 할 것이)다. 내가 손해배상을 당해도 좋다”고 말했다. 구본장에서 쫓겨난 주민 등은 이 말을 듣자 울며 박수쳤다. 박 시장은 “(철거) 공사가 너무 많이 진행돼 상황이 어려운 건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오늘 대책위와 만나기로 돼 있었는데 아침에 이렇게 하면 예의도 아니다. 설득과 함께 다른 길이 없는지 알아보자 했는데 만나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박 시장은 이날 오후 시장실에서 대책위 관계자들과 면담할 계획이었다.
옥바라지 골목이 포함된 무악2구역 재개발사업조합은 퇴거를 거부하는 주민들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해 최근 승소했다. 지난 4일 주민들은 ‘11일까지 자진 퇴거하라’는 조합 쪽의 강제집행 예고장을 받았으나 불응했다.
재개발 시행사인 롯데건설은 옥바라지 골목이 포함된 무악2구역 재개발지구 약 1만㎡에 아파트 195가구를 지을 예정이다. 대책위는 “옥바라지 골목은 백범 김구 선생이 서대문형무소에 갇혔을 때 어머니 곽낙원 여사가 삯바느질해가며 옥바라지를 하는 등 독립투사와 가족들의 애환이 서린 100년 역사의 현장이므로 보존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3월 “미이주한 주민들과 조합, 종로구청에서 사전 협상이 완료되지 않았고, 옥바라지 골목 등의 보존 방안에 대해 현장조사를 하고 있으니 철거 유예 조처를 해주시기 바란다”는 공문을 종로구 등에 보냈으나 조합은 무시했다. 종로구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만 보여왔다. 박 시장이 ‘철거 중단’이라는 ‘초강경책’을 꺼내든 이유다. 서울시는 “당장 철거를 중단하고 합의 없이는 더 이상의 절차가 진행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2012년 7월 용산 참사를 다룬 영화 <두개의 문>을 관람하면서 “제가 당시 서울시장이었다면 저 앞(농성장)에 가서 강제철거를 못하게, 경찰 물러나라고 했을 것이다. 국가권력이 이렇게 잔인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해 관악구 봉천8동 봉천12-1 재개발사업구역의 ‘강제철거 통보’ 보도(<한겨레> 2012년 6월28일치 1·3면) 뒤 서울시의 ‘강제철거 불허’ 방침을 밝히고 서울 전역의 강제철거 현황 조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원낙연 임인택 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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