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이창명(47)씨의 음주운전 혐의를 밝히기 위해 지난 한 달 동안 디지털포렌식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의뢰까지 이어진 경찰의 ‘고군분투’가 검찰 송치로 마무리된다. ‘음주운전 처벌 강화’를 주장해온 경찰 수뇌부까지 직접 나서며 이례적으로 강한 의지를 보인 사건인데,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해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9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서울 여의도에서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가 신호등을 들이받고 달아난 혐의(음주운전·사고 후 미조치 등)로 이씨를 20일 불구속기소 의견으로 송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씨와 당시 동석자들은 현재까지도 “이씨가 술을 마신 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음주 사고 뒤 잠적했다가 22시간 만에 경찰 조사를 받은 까닭에 이씨의 정확한 혈중 알코올 농도를 알 수 없다는 점이 향후 검찰 조사와 법정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0일 이씨의 음주운전 논란이 불거진 이후, 강신명 경찰청장은 “알코올 농도가 측정되지 않더라도 목격자 진술을 확보해서라도 입건할 것”이라며, 강력한 처벌 의지를 드러냈다. 이상원 서울지방경찰청장도 뒤이어 “사회 지도층인 연예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단죄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 무렵, 상습 음주운전자에 대한 차량 몰수 방침 등을 발표하는 등 경찰 수뇌부가 강력한 ‘음주운전 척결’ 의지를 보이면서, 이씨의 음주 사건은 혐의를 반드시 입증해야 할 ‘본보기 사건’이 됐다.
사건을 맡은 영등포경찰서는 동석자 소환조사와 폐회로티브이(CCTV) 확인은 물론, 디지털포렌식, 국과수에 혈중 알코올 농도 확인 의뢰, 압수수색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수사 방법을 썼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경찰은 “음주운전 사건으로 이 정도까지 수사를 한 건 이례적이다. 경찰청과 서울청에서 특별히 언급한 사안이라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 달에 걸친 이례적 수사 끝에 경찰이 이씨의 음주 증거로 제시한 것은 ‘소주 2병을 마셨다(환자 주장)’라고 적힌 병원 의무기록이었다. 경찰은 “소주 2병을 마셨다는 전제로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하면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48%였다고 볼 수 있다”며 기소 필요성의 근거로 삼았다. 또 경찰은 “이번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조사 과정에서 발견됐다”며 이씨가 운전한 차량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의무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다는 점도 혐의(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위반)에 추가했다.
이씨가 음주운전을 했을 것이란 정황만을 갖고 혐의를 단정해 ‘증거 찾기식’으로 이뤄진 경찰의 이러한 수사 방식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손수호 법무법인 현재 변호사는 “증거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 수뇌부가 공개적으로 반드시 입건하겠다고 이야기한 것은 ‘무죄추정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며 “법원에서 증거가 인정받지 못할 경우 오히려 틈새를 노린 음주운전을 부추기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도환·한진철 법률사무소의 한진철 변호사도 “위드마크 공식을 활용한 혈중 알코올 농도 추정은 엄격한 전제를 필요로 한다”며 “사회적으로 이씨의 행동을 문제삼을 수는 있지만, ‘병원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정도로는 혐의를 입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여러 차례 판례에서 “과학 공식 등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법칙 적용의 전제가 되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 엄격한 증명을 요한다”며 위드마크 공식에 의한 혈중 알코올 농도 추정을 인정하지 않은 바 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