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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수락산 살인사건, ‘묻지마 범죄’ 배제하고 수사했나?

등록 2016-06-08 20:02수정 2016-06-09 09:30

수락산 등산객 살인사건 피의자 김학봉(61) 5월 31일 오전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위해 북부지법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수락산 등산객 살인사건 피의자 김학봉(61) 5월 31일 오전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위해 북부지법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더(The) 친절한 기자들] 경찰의 찜찜한 수사결과 발표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혐오·묻지마 범죄’ 여론관심 높자
경찰 범행동기 예민하게 반응…결국 강도살인 혐의로 검찰 송치
“수락산 등산로에서 발생한 ‘강도 살인 사건’의 피의자 김학봉을 구속 수사해 오늘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8일 오전 서울 노원경찰서에서 ‘수락산 살인사건’ 수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경찰이 배포한 A4용지 3장 짜리 브리핑 자료엔 ‘수락산 등산객 강도 살인 사건 수사결과’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습니다. 수사를 지휘한 노원서 백경흠 형사과장은 ‘강도살인’ 피의자 김학봉(61)씨에 대한 최종 수사결과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경찰은 김씨의 범행동기를 집중 추궁해 경찰은 김씨가 금품을 빼앗을 목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냥 사람을 해친 것이 아니라, 금품을 빼앗을 목적으로 사람을 해쳤다는 것에 방점을 찍은 것입니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이후 터져나온 생면부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인 까닭에 ‘여성혐오 범죄냐’, ‘조현병 환자에 의한 묻지마 범죄냐’ 무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번 사건은 강도 살인 혐의로 서울 북부지검에 송치됐습니다.

열흘에 걸친 경찰의 수사결과가 최종 발표되던 자리에서 기자들은 뭔가 개운치 못 하다는 느낌으로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경찰이 이번 사건을 조현병 환자에 의한 묻지마 범죄가 아니라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애써 금품을 빼앗기 위해 저지른 ‘일반적인’ 강도살인죄로 규정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탓입니다. 기자들은 왜 그런 의심을 가졌을까요.

사건이 발생한 지난달 29일로 돌아가 찬찬히 짚어보겠습니다. 그날 오전 5시20분께 수락산 등산로에서 피해자 ㄱ(64)씨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범행 13시간 뒤인 오후 6시 반께 곧장 피의자가 특정됐습니다. 김씨가 스스로 ‘내가 사람을 죽였다’며 경찰서에 자수를 해온 것입니다. 김씨는 살해된 ㄱ씨를 이날 처음 봤다고 경찰에 진술했습니다. ‘모르는 여성을 죽여놓고 자수를 했다?’ 사건 발생 며칠 전 세상을 들끓게 했던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과 ‘부산 각목 폭행 사건’(길거리를 지나가던 여성을 때린 사건) 등 잇따라 일어난 여성 상대 범죄들을 통해 부각됐던 ‘여성혐오’, ‘조현병’, ‘묻지마 범죄’ 같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김씨의 범행 동기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사건 발생 다음날인 30일 경찰은 수락산 살인사건은 ‘묻지마 범죄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고 나섰습니다. “새벽에도 산에 사람이 다니는지 궁금해서 산에 올라갔다…산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살해 도구로 쓰인 15㎝길이의) 과도를 구입했다”는 등 김씨가 일관성 없는 진술을 하고 있어 ‘정신병력을 확인하고 있다’, ‘프로파일러를 투입하겠다’는 계획까지 밝히면서도, 김씨가 2001년 돈을 빼앗기 위해 사람을 죽인 전과가 있어 ‘묻지마 범죄라고 볼 수 없다’라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경찰은 그날 김씨에 대해 ‘살인죄’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도, 강도살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지난 2일 “김씨가 지난달 12일 누나와 함께 경기도 안산의 한 정신병원에 들러 ‘편집 조현병’ 약을 10일분 처방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경찰은 최종 수사결과에서도 묻지마 범죄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조현병을 앓은 김씨의 병력과 범행과의 상관성에 대해서도 부인하고 나섰습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와의 면담 결과, “범행도구를 유기하고 자수를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등 충동적이고 비체계적인 생활 양식을 보였지만, 표면적인 범행동기(금품)를 구체적으로 진술했다”는 점을 밝히면서 “조현병이 범행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경찰은 피해자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된 목 부위의 상처 외에 피해자의 배와 등 부위에 칼에 의한 얕은 상처가 생긴 과정, 김씨가 범행 전 10일 이상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에 대해 집중 조사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경찰은 김씨가 ‘밥이라도 사먹으려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동기를 일관되게 진술했다고 밝혔습니다. 여성에 대한 혐오 범죄도, 조현병에 의한 묻지마 범죄도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씨는 이날 검찰에 송치되기 전 진행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찰의 주장과는 배치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아닙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사는 게 힘들고 어려워서, 짜증나고 화가 나서 그랬다”고 말했습니다. 김씨는 이어 “피해자를 흉기로 해하면서 금전을 요구한 게 아니냐, 과도는 왜 산 것인가”라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반복했습니다.“산에 왜 갔냐”는 질문에도 “정신적으로 충동을 일으킨 것 같다”는 답변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강도살인을 저지른 게 맞나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은 이에 대해 “인터뷰를 진술이라고 할 수 없다”며 “처음 진술 외에는 돈을 뺏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경찰이 김씨의 범행이 표면적인 범죄 동기를 찾아볼 수 없는 ‘묻지마 범죄’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과도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묻지마 범죄는 사회적인 여러 병리현상들에 의해 나타나는 것인데, 이를 해결하지 못한 국가와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경찰이 부담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죄는 여러 가지 요인이 혼합돼 발생할 수 있는데, 경찰이 ‘묻지마 범죄다, 아니다’라는 식으로 범죄를 규정지으면서 O, X문제로 풀려고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경찰은 조현병을 앓았던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김씨의 신상을 공개해 신상 공개의 기준이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를 인식한 듯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의자는 중증의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처벌과 동시에 치료대상이라 판단해 신상을 비공개한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동종전과가 있고 출소 4개월만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강남역 사건과 다르다. 범죄예방 등의 공익적목적으로 공개가 적합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이수정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조현병과 범행과의 상관성은 재판 절차에서 형사책임 조각사유를 따지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밝힐 문제”라면서도, “경찰의 행정입원 조치가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일었는데, 또 다른 논란을 피하고 싶은 의지가 반영되지 않았겠나”라고 말했습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디스팩트 시즌3 #5_언론은 왜 성폭력 가해자 시각에 복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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