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24일 구속기소된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횡령한 돈의 일부를 해외원정 도박자금으로 쓴 사실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지난해 검찰이 정씨를 상습도박으로 기소하면서 횡령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원석)는 이날 정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배임 혐의와 위증을 한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정씨는 지난해 1~2월 네이처리퍼블릭 법인자금(18억)과 에스케이월드 법인자금(90억) 등 총 108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에스케이월드는 2009년 서울도시철도공사 해피존 사업 입찰참여를 위해 설립한 회사다. 정씨는 2010년 12월 자회사 세계홀딩스 법인자금을 한 호텔에 빌려준 뒤 호텔이 돈을 갚지 못하자 변제 목적으로 제공한 호텔 2개층 전세권(35억원)을 개인 명의로 받았다. 검찰은 정씨가 2012년 11월 변호사법 위반으로 기소된 심아무개씨 공판에 출석해 위증한 사실도 밝혀냈다.
검찰은 정씨가 횡령한 돈의 사용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13억원이 해외원정 도박자금으로 쓰인 사실을 확인했다. 나머지는 생활비와 각종 소송비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재수사를 통해 정씨가 회삿돈을 빼돌려 도박자금으로 쓴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난해 정씨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지난해 10월 정씨를 구속기소하면서 상습도박 혐의만 적용하고, 형량이 더 높은 횡령(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은 빼줘 ‘봐주기 기소’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정씨가 수사기관의 원정도박 단속을 피하기 위해 네이처리퍼블릭과 에스케이월드 등이 보유한 자금을 이용해 도박빚 정산 대금을 세탁했다”고 적시돼 있어, 당시 수사팀이 횡령을 들여다보고도 기소 때 빼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컸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당시 수사팀은 정씨의 계좌추적을 통해 두 회사에 돈을 넣었다 뺀 사실을 확인하고 횡령 혐의를 추궁했다. 하지만 정씨는 회사에 빌려준 본인 자금(가수금)이라고 주장했다. 정씨가 도박자금인 것을 숨기기 위해 회사 정산자금처럼 가장을 했다고 의심을 한 것이지 횡령을 적발한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검찰은 원정도박으로 정씨를 포함해 기업인 12명을 기소하면서 해운업체 대표 문아무개씨와 폐기물업체 대표 임아무개씨에게는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두 사람은 자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업 대표가 도박을 했는데, 그 돈이 횡령인지 찾겠다고 그룹 전체를 압수수색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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