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남부 넌헤드 지역의 펍인 ‘아이비하우스’는 영국 최초이자 런던 최초로 이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고 있다. 펍의 누리집에 ‘런던 최초의 협동조합 소유 펍’이라 쓰여 있다. ivyhousenunhead.com
‘둥지 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는 해법으로 시민 공동의 자산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힘을 얻지만, 시민자산화로 가는 길은 아직 요원하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아직 이런 소유형태를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탓이 크다.
관련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시민자산화는 특정인의 사적 소유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부나 지자체 같은 공공의 소유도 아니다. 시민들이 공동의 소유권을 만들고, 책임있는 협치구조를 통해 함께 운영해가는 과정을 이른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정치학자 엘리너 오스트롬은 경제학 최대 난제라 불리는 ‘공유의 비극’의 대안을 제시한 인물이다. 그는 세밀한 조업 규칙을 만들어 어장을 관리하는 터키 어촌과 방목장을 함께 쓰는 스위스 목장지대 같은 사례를 발굴하고 분석해 ‘공유자원은 제대로 관리될 수 없으며 완전히 사유화되거나 정부에 의해 규제돼야 한다’는 전통적 견해에 맞섰다. 시민 공동의 소유가 자산을 결코 무책임하게 방치하는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실증이었다. 국내에도 제주의 마을 공동목장이나 전국 1천여개에 달하는 공동어장들이 이런 형태로 관리된다.
문제는 법·제도적 뒷받침이다. 가치 있는 자산에 대해 소유자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고, 공동체가 이를 실제로 소유할 수 있도록 대안적 금융 지원을 하는 일이 필요하다. 공동체 외에 특정 개인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도 갖춰야 한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선 현실적으로 사유 자산보단 공공의 자산을 활용해 수익을 얻고 이를 기반으로 다시 시민 자산으로 만드는 전략이 유효하다. 실제 영국 런던의 해크니협동조합개발회사는 ‘통후추 한 알’을 주고 구청 소유의 건물을 넘겨받아 운영수익을 내 현재는 80여개 공간을 임대해 운영하고 있다. 역시 영국의 헐 지역 굿윈개발신탁도 비슷한 방법으로 버려진 요양원과 슈퍼마켓, 펍(Pub)을 공동체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어떤 방식이 되었건, ‘당사자들’이 주도해 일정 규모의 초기자금을 만드는 것은 필수다. 휴대전화 대리점 사업, 애완동물 간식 판매 등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금 일부를 소비자가 지정한 시민사회단체나 지역공동체에 기부하는 공동체이익회사 ‘굿바이’의 실험도 주목할 만하다. 자금 마련의 수단으로 공익신탁제도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지난해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공익신탁법은 기부 활성화를 목적으로 마련됐다. 기부를 더 쉽게 하고 기부자의 의도에 맞게 자금이 쓰이는지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인데,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9월 만든 ‘청년희망펀드’가 대표적이다.
전은호 서울시 협치지원관은 “공익신탁 등의 형태로 조성한 시민들의 기초자금으로 공익재단을 만들고 이 재단이 주체가 돼 도심공간 내 시민자산을 확보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또 민관이 함께 재단을 만들어 공공의 재산 가운데 시민들이 주도할 만한 자산을 ‘시민자산화’할 수도 있다”고 했다. 모금의 주체를 ‘신뢰도 높은’ 공익재단으로 정해 이를 통해 시민자산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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