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나눔꽃 캠페인
보호시설서 검정고시 준비 박진웅군
“후회 많은 나, 따뜻한 체육선생님 꿈꿔요”
보호시설서 검정고시 준비 박진웅군
“후회 많은 나, 따뜻한 체육선생님 꿈꿔요”
ㄱ군이 22일 오후 대전 낭월동 효광원에서 멀리뛰기를 하고 있다. 대전/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할머니와 살며 15살에 생활전선
퀵서비스·음식배달 ‘알바’ 전전
일해 번 돈 갚지 않은 친구 때려
시설 치료·보호 처분 받아
“입소 첫날밤 숨죽여 울다가
할머니 얼굴 떠올랐어요”
직업훈련 틈틈이 운동·공부
사범대 진학 꿈 구슬땀 “입소 첫날 밤, 누워서 소리도 못 내고 많이 울었어요. 할머니 얼굴이 떠올랐어요. 10월까지 여기서 지내야 하는데…제 자신에 대한 후회가 밀려들었어요. 그때 난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에게도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남아있다. 8살 때까지만해도 박군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어머니·아버지 그리고 여동생과 함께 경남 거창에서 나고 자랐다. 직장을 따라 대구와 거창을 오갔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언제부턴가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이혼을 결심한 어머니가 먼저 집을 떠났다. 얼마 뒤, 아버지도 자취를 감췄다. 중풍으로 누워지냈던 할아버지를 대신해 살림을 떠안은 할머니는 손자와 손녀를 정성껏 보듬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기뻤던 재회도 잠시, 남매는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렸다. 술 취한 아버지의 비틀거리는 그림자가 방안으로 드리워지면 남매는 긴장했다. 한 살 어린 여동생이 공포에 질린 모습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어머니에게 폭행 사실을 알렸다. 아동학대 혐의로 구속된 아버지는 교도소에 수감됐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동생과 생이별하게 될 줄은 박군은 몰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엄마의 신고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보내졌어요. 여동생은 창원으로, 저는 진주로 가게 됐죠.” 박군은 2011년 이후 동생과 연락도 끊긴 채 한동안 보육원에서 지냈다. 동생과 마주 앉아 밥을 먹고, 배드민턴을 치고, 티브이(TV)를 보면서 깔깔거리던 일상, 박군 생애에 “가장 행복했던 추억”을 빼앗긴 것이다. 동생과 떨어지게 만든 엄마가 미웠다. 누구 하나 의지할 곳이 없었던 중학교 1학년, 사춘기가 찾아왔다. 고아원에서 만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늦은 밤까지 거리를 배회하다 돌아오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반복되는 지각으로 학교 생활도 위태로워졌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보육원으로 옮겨져 1년, 종교시설이 운영하는 보호시설로 다시 옮겨져 1년을 살았다. 시설마다 운영 방침이 달라 적응하는 일도 벅찼지만, 또래 친구들의 욕설과 폭행을 외면하는 선생님의 무관심도 힘들었다. “말썽도 피우고, 적응을 잘 못하니까 선생님이 상담을 받아보자고 병원으로 데리고 갔어요. 의사 선생님을 만났을 때 시설 선생님이 겁을 주거나 때리고, 욕을 해서 힘들다고 말했어요.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 대구에 있는 정신병원에 3개월쯤 갇히게 됐어요.” 퇴원 뒤,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는 집으로 돌아갔다. 중학교 2학년 과정을 포기하는 대신, 아르바이트를 택했다. 무릎이 아파 고생하는 할머니를 대신해 휴대폰 판매업, 오토바이 퀵 서비스 배달, 음식 배달과 식당 서빙 등 가리지 않고 일했다. 휴대폰 판매점에서 일할 때는 한 달에 판매 실적이 좋아 월급을 250만원까지 받기도 했다. 그 돈으로 백내장 진단을 받은 할머니의 수술비로 쓰고, 집안 살림에도 보탰다. 큰 돈을 손에 쥐게 되자, 돈을 빌려달라는 이들이 생겼다. 지난해 7월, 100만원을 빌려간 친구가 돈을 갚지 않았다. 돈을 갚겠다던 친구를 믿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습을 감췄다. 기다릴 수만은 없던 박군은 친구를 붙잡아 산으로 올라갔다. “있는 돈을 다 빼앗고, 분이 풀릴 때까지 때렸어요. 친구가 피를 많이 흘려서 병원에 데리고 갔죠. 부모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과도 했는데, 뺨을 많이 맞았어요. 친구 부모님이 신고를 해서 재판까지 받게 됐죠. 친구를 때렸던 게 가장 후회스러워요.” 효광원 생활 두 달째, 박군의 하루 일과는 규칙적으로 짜여 있다. 오전 6시30분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요일마다 달라지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오후에는 자동차 정비반에서 직업 훈련을 받고, 검정고시반에서 공부한다. “사회에서 생활할 때는 습관이 안 좋았거든요. 깨우는 사람이 없으니 밤낮이 바뀐 채로 지냈고, 하루에 한 끼 밖에 못 먹었어요. 나쁜 습관을 고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김군이 요즘 가장 집중하고 있는 건 검정고시 준비다. 김군은 오는 10월 효광원에서 퇴소해 할머니·할아버지 곁으로 돌아가게 된다. 집안에서 돈벌이를 할 사람은 김군뿐이라, 공부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석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박군이 세운 목표는 꽤나 구체적이다. 검정고시에 합격하면, 대구 경북대학교 부속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첫번째 목표로 정했다. 그 뒤엔 경북대학교 사범대에 진학하는 것이 두 번째 계획이다. 이제껏 자신을 믿어 주고 응원해주는 선생님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학생들에게 인성과 체력을 길러주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박군의 최종 꿈이다. 고민이 생기면 의논할 수 있는 “형 같은 멘토 선생님을 만나고 싶은 바람”도 있다.
보도이후
<한겨레>와 대한적십자사가 함께한 ‘2016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가족에게 연이어 찾아온 병마로 생활고를 겪는 정정양(39)씨 사연이 소개된 뒤, 1096명이 후원에 동참해 모두 2092만8031원(6월30일 기준)의 정성이 모였다. 대한적십자사는 “많은 분들의 관심 속에 소중한 후원의 손길이 이어져 당초 모금 목표액(1050만원)을 훌쩍 넘겨 모금할 수 있게 됐다”며,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대단히 감사드린다”고 전해왔다. 정씨의 뜻에 따라 목표액이 넘는 금액은 다른 위기가정 지원에 사용된다. 목표액이 달성됐지만,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열려있다. 정기적인 후원으로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분들은 대한적십자사(1577-8179)에 연락해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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